자연 앞의 우리의 존재와 역할을 일깨워주는 그림책, 『태풍이 찾아온 날』

2022-09-29
조회수 115


자연 앞의 우리의 존재와 역할을 일깨워주는 그림책, 『태풍이 찾아온 날』





얼마 전 강력한 태풍이 우리나라를 향해 북상하고 있다는 예보를 듣고 아이가 눈이 동그래져서 저에게 되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엄마, 정말 태풍이 오고 있어? 그럼 이제 우리 어떡해~” 아이는 어릴 때부터 유독 날씨에 예민하게 반응하곤 했습니다. 바람결에 나뭇잎이 살랑거려도, 빗방울이 토도독 떨어져도 혹시 우리가 위험해지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했지요. “괜찮아~ 태풍은 원래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이 시작될 때 우리나라에 자주 와. 바람이 강하게 불긴 하지만 미리 준비하고 조심하면 돼. 그 책 같이 읽었던 것 기억 안 나?” 저는 아이를 안심시키면서 우리가 함께 읽었던 그림책을 환기시켜 주었습니다.

그 책은 린다 애쉬먼 글, 유태은 그림의 <태풍이 찾아온 날>입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유태은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린다 애쉬먼이 글을 쓴 이 책은 2020년에 출간되었는데 이 책을 처음 구입한 이유 역시 태풍 예보에 불안해하던 아이에게 읽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앞표지를 보면 한 남자아이가 강아지와 함께 오른쪽을 향해 뛰어가고 있습니다. 아이 주변으로 나뭇잎이 뒹굴고 나무들이 오른쪽으로 휘어져 있는 것을 보아 제법 센 바람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 그림 위에는 ‘태풍이 찾아온 날’이라는 제목과 함께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표지의 그림과 제목을 자세히 읽다 보면 아이가 왜 뛰고 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태풍이 불어오자 아이가 강아지와 함께 언덕 위를 올라 집을 향해 뛰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표지를 넘겨 앞 면지를 보면 예닐곱개의 구름을 볼 수 있습니다. 먹색으로 커다랗게 그려진 구름은 금세라도 비를 쏟을 것만 같습니다. 제목이 쓰여진 표제지를 지나 헌정 페이지로 오면 마을의 전경이 나타납니다. 맨 왼쪽에는 등대가 있고, 면지에서 본 먹구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해 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마을 위로 갈매기와 새들이 날아다니고 나무는 세찬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집들이 대부분 남색 또는 먹색에 가깝게 그려진 반면 유독 눈에 띄는 두 집이 있습니다. 주황색 지붕의 집과 이웃하고 있는 푸른색 지붕의 집입니다.


헌정 페이지를 넘기면 본문이 시작되는데 앞서 눈에 띄었던 두 집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주황색 집안에는 다락방에서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 아이가 고양이와 함께 창밖을 바라보고 있고, 지붕 위에는 고래 모양의 풍향계가 바람에 뱅글뱅글 돌고 있습니다. 이 책의 글은 펼침면을 넘길 때마다 주거니 받거니 질문과 답으로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본문 첫 펼침면에서 “풍경이 딸랑딸랑, 바람개비가 뱅그르르. 멀리서 구름이 몰려오면 너희는 뭘 해?”라고 질문이 나오면, 다음 펼침면에서 ‘우리’가 질문에 대해 답을 합니다. 이때 질문에 답을 하는 ‘우리’는 다양합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다가오는 우르릉 소리를 듣는 ‘우리’는 여우들이고, 가만히 지켜보며 킁킁 냄새를 맡는 ‘우리’는 다람쥐들입니다.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태풍에 대비합니다. 사람들은 집안에서 필요한 물건을 확인하고 뉴스에 귀를 기울입니다. 고양이는 편안한 곳을 찾아 쿠우울 쿠우울 잠을 자기도 합니다. 태풍이 올 때 동물도 사람도 날씨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준비를 하지요.


풀이 일렁이고 나무가 휘청이며 하늘이 회색으로 변하면 너희는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서는 표지에서 보았던 남자아이가 강아지와 함께 집을 향해 뛰어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푸른색 지붕의 집 앞에서 아이의 엄마는 어서 오라고 손짓합니다. 책장을 넘기면 제비들은 “우리는 처마 밑에 모여.”라고 대답하고, 나비들은 “우리는 튼튼한 나무에 앉아 쉬어.”라고 대답합니다. 벌들은 바쁜 일을 잠시 미루고 집으로 돌아가 숨고, 토끼들은 작지만 든든하고 안전한 통나무에 들어갑니다. 물론 남자 아이 역시 강아지와 함께 안전하게 집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도 동물도 모두 안전한 보금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럼 바다에서는 어떨까요? 파도가 거세고 부표가 마구 흔들릴 때, 놀랍게도 갈매기는 태풍을 타고 납니다. 그리고 작은 섬을 찾아 그곳에서 조용히 기다립니다. 고래와 물고기들은 태풍을 피해 깊은 바닷속으로 헤엄쳐 들어갑니다. 사람들은 배를 단단히 걸고 묶으며 대비합니다. 또 정원에 두었던 의자와 파라솔, 방석 등 물건을 안으로 들여놓습니다. 동물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태풍을 피하고, 태풍이 지나가길 조용히 기다리는 반면, 사람들은 배와 생활도구들도 책임감을 갖고 미리 관리하여 태풍에 대비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제 정말로 태풍이 바닷가 작은 마을 위를 지나갑니다. 천둥번개가 치고 대문과 덧문이 덜컹거리며 흔들리고 캄캄한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면, 토끼들은 통나무 속에 웅크린 채 밖을 바라보며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립니다. 사람들은 촛불을 켜고 둥글게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체스 게임을 합니다. 그리고 후드득, 보슬보슬, 퐁퐁, 톡톡, 다양한 소리를 내는 빗소리에도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고 보면 태풍이 지나가는 시간이 꼭 두려움으로 가득차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가족과 더 가까이 둘러 앉아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낼 수도 있습니다. 또, 우리의 한계를 분명히 알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이제 드디어 태풍이 지나가고 해가 나오며 온 세상이 고요해집니다. 그림을 보면 하늘에는 먹구름을 가르고 밝은 태양이 말갛게 얼굴을 내밉니다. 물결이 잔잔하고 마을 곳곳에는 쓰러진 나무와 물웅덩이들이 보입니다. 글에는 “태풍이 물러가면 너희는 뭘 해?”라는 마지막 질문이 쓰여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면 다시 동물들이 대답합니다. 여우와 다람쥐들은 굴에서 나와 천천히 둘러보고, 갈매기들은 높이 날고, 강아지는 몸이 마를 때까지 털에 묻은 물기를 털어냅니다. 그럼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요? 사람들은 나뭇잎을 쓸고 긁어모으고 쓰레기를 치우며 청소를 합니다. 그리고 반죽을 섞고 굽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를 청소하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난데없이 반죽을 섞는다는 문장이 나오니 당황스럽지만, 그림을 보면 집안에서 요리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입니다. 다시 책장을 넘기면, 이런 대답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웃들이 잘 있나 살펴봐. 부서진 곳을 고치고 탁자와 의자를 꺼내 와.” 주황색 지붕 집과 푸른색 지붕 집 사이 공터에 사람들은 테이블과 의자, 파라솔을 꺼내고 갓 구운 빵과 주스를 내옵니다. 마을 이웃들은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안부를 묻고 모입니다. 또 부서진 지붕을 고치는 사람도 보입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사람들은 다 같이 눈부신 햇살을 즐기며 태풍이 사라져서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근사한 날씨, 다시 모인 친구들, 모두모두 반가워.”라는 마지막 문장에서 사람들이 함께하며 누리는 기쁨과 좋은 날씨에 대한 감사함이 느껴집니다.

최근 자연 환경이나 생태와 관련하여 ‘위기’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됩니다.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면서 인간의 책임 있는 행동에 대해 강조하다 보니 다수의 그림책에서 문제 자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해결의 실마리는 찾을 수 없고 위기감만 가득한 비극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거나, 혹은 선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망가뜨린 인간을 악한 존재로 묘사하는 내용이 자주 보이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그림책들을 읽으면서 어린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되고,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태계의 균형이 깨어져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들은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낄 것입니다. 또, 이러한 위기가 악한 인간들 때문에 생겨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은 스스로를 포함한 인간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인간을 혐오하는 마음을 품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Martín, Hageman, Montgomery, & Rule[1]은 잘못된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환경 교육의 접근 방법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며, 아이들이 환경 문제를 변화시킬 수 없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면 아이들은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낄 수 있으며, 따라서 아이들이 자연에 대한 인식을 키우고 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면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이 책은 비록 환경 문제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 앞에서 혹은 재해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 앞에서- 태풍의 위력을 묘사하는 데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우리의 태도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 줍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태풍은 우리를 ‘찾아옵니다’. 우리는 태풍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대비할 수 있습니다. 제 아이처럼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일 수 있는 어린이들은 이러한 종류의 그림책을 읽으며 태풍이 올 때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정보를 얻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관심을 갖고 뉴스에 귀를 기울이며 필요한 물건을 미리 준비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안전하게 머무르며 잠잠히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안전한 보금자리가 있음에 감사할 수 있고, 한편으론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며 겸허하게 조용히 기다려야 하는 때가 있다는 교훈을 얻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안위를 살피는 동시에 우리에게 속한 것들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배우게 됩니다. 배를 단단히 걸고 묶고 파라솔과 의자를 집안에 들여놓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위기의 시간이 오히려 가족들과 함께하는 따듯한 시간,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하는 삶의 오묘한 이치를 경험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태풍이 물러가듯 이러한 위기는 반드시 지나간다는 것도 깨닫게 되지요. 이러한 위기 끝에 다시 마주하는 맑은 날씨에는 일상의 소중함도 느끼게 되고, 우리가 이웃의 안부를 확인하며 살피고 돌볼 책임이 있는 공동체의 일원임도 배우게 됩니다.

한편 이 그림책에서 우리는 자연관과 인간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접목되고 있는 ‘생태주의’는 자연 속의 모든 생명체들이 상호 동등한 생존권을 갖고 있다는 평등 의식을 표방하는 사상입니다[2]. 하지만 성경에서는 다른 동식물과 인간을 동등한 위치로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만이 귀하고, 동식물과 같은 자연이 귀하지 않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지으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고, 하나님이 흙으로 만드신 후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으며,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역할을 주셨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그림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글에서 제기되는 질문에 각자 다양한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태풍이 작은 바닷가 마을을 찾아올 때 동물들의 대응과 사람들의 대응은 똑같지 않습니다. 동물들은 그저 감각을 사용해서 상황을 파악하거나, 지켜보고, 안전한 곳으로 피하고, 조용히 기다립니다. 반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돌볼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속해 있는 물건들도 관리합니다. 또 태풍이 지나간 후 망가진 것을 고치고 더럽혀진 것을 깨끗이 치우며 환경을 돌봅니다. 이웃들이 잘 있는지도 살피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교제합니다. 이 책에 그려진 사람들의 모습은 성경적인 인간관, 특히 자연 만물을 보살피는 청지기의 소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는 생태주의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리기 보다는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생태주의를 조명하여서 먼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인간관과 자연관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청지기의 소명을 가지고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기쁨과 열정으로 행하도록 격려하는 그림책을 읽어 주어야겠습니다. 


[1]  Martín, N. M., Hageman, J. L., Montgomery, S. E., & Rule, A. C. (2019). A content analysis of thirty children’s picture books about ecology. Journal of STEM Arts, Crafts, and Constructions, 4(1), p.86. 
[2]  송주연, 정명숙, & 유수경. (2009). 그림책 ‘강아지 똥’에 나타난 생태주의. 아동교육 18(1), p.145.






김현경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교육학과 the PLACE 연구소에서 Visiting Scholar를 지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미디어에 담긴 세계관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