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 『안녕, 물!』
혹시 여러분은 자연에게 “안녕?”하고 말을 걸어본 적이 있나요? 저는 종종 그렇게 인사를 한답니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다가 봄 냄새를 맡고 쏘옥 새 줄기를 밀어 올린 수선화가 기특해서, 혹은 밤새 요란하게 내리던 비가 잦아들고 말갛게 얼굴을 드는 해가 반가워서, 아이에게 말을 걸듯 인사를 건넬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한 여자아이가 물안경을 쓰고 물속에서 빙긋 웃으며 ‘물’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 물!”하고 말이지요.
앙트아네트 포티스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그림책 <안녕, 물!>은 아이의 목소리로 물에 대한 정보를 들려주는 정보 그림책입니다. 아이는 물에게 친근하게 인사하며 나는 너를 잘 안다고, 물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합니다. 표지에서부터 아이는 물안경을 쓰고 물 속에서 기분 좋은 표정으로 독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 함께 물을 만나러 가요!’하고 말을 거는 것만 같지요. 물결이 일렁이는 면지를 지나면 표제지에서 아이는 욕조 안에 있습니다. 그 다음장부터 본문이 시작되는데 전체적으로 물에 대한 정보 구성은 1) 도구를 통해 만날 수 있는 물, 2) 장소에 따라 만날 수 있는 물, 3) 액체, 기체, 고체와 같은 상태에 따라 만날 수 있는 물, 4) 생명체 속에 있거나 우리 가까이에 있는 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도구’를 통해 물을 만나볼까요? 우리가 목마를 때 컵에 담을 수 있도록 수도꼭지에 물이 있습니다. 또 정원의 스프링클러와 욕실의 샤워기, 호스에도 있지요. 아이가 언급한 수도꼭지와 스프링클러, 샤워기, 호스는 물이 나오게끔 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데 어떤 도구(통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물은 아래에서 위로 뿜어져 나오기도 하고, 위에서 아래로 뿌려지기도 합니다. 또 콸콸 나오거나 줄줄 흐르기도 합니다. 작가는 위와 아래의 개념, 직선과 곡선의 개념을 많은 글로 설명하는 대신 자연스레 그림속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물은 다양한 ‘장소’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물은 굽이굽이 흐르는 개울과 강에도 있고, 바다에도 있습니다. 작가는 개울, 강, 바다를 어떤 순서와 방법으로 제시할지를 섬세하게 구성하여 글의 부연 설명 없이 그림만으로도 점층의 개념을 생각해 보게 해 줍니다. 호스의 곡선과 유사하게 개울의 그림을 제시할 때에는 호스 그림보다 좀 더 높은 시점에서 좀 더 두터워진 물줄기를 그리고, 강의 그림을 제시할 때에는 개울보다 좀 더 높이 있는 시점에서 제법 넓어진 강줄기를 그립니다. 바다의 경우에는 펼침면을 꽉 채워 넘실대는 파도와 고래를 그림으로써 끝없이 펼쳐지는 것만 같은 광활한 바다를 표현합니다.
이제 물은 점강의 개념으로 점점 작아집니다. 광활한 바다에서 조금 낮아진 시점으로 둥근 호수를 설명하고, 다시 좀 더 낮아진 시점으로 수영장을 설명하며, 또다시 좀 더 낮아진 시점으로 작은 물웅덩이를 그립니다. 사람들은 호수에 배를 띄우기도 하고,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고 놀며, 물웅덩이에서 발을 구르기도 합니다. 물은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만날 수 있고, 사람들은 물이 있는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물은 크기나 모양이 변할 뿐만 아니라 상태(성질)가 변하기도 합니다. 이른 아침 풀잎 끝에 있는 이슬 방울도 물이고, 뺨을 타고 조용히 흘러내리는 눈물 방울도 물입니다. 때로는 큰 소리로 울며 쏟아져 내리는 빗방울도 물이지요. 앞에서 설명한 물은 모두 ‘액체’이지만, 물이 항상 액체의 상태인 것은 아닙니다. 주전자 입구 끝에서 화난 듯 씩씩거리다가 휘파람을 불며 뿜어져 나오는 김, 하늘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 온 세상을 꼭꼭 숨겨 버리는 안개는 ‘기체’입니다. 바위처럼 꽁꽁 얼어붙은 얼음덩어리나 바다 위의 빙산, 스케이트장과 눈은 ‘고체’이지요.
사실, 물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 있습니다. 눈사람 안에도 있고, 진짜 사람 안에도 있으며, 동식물 안에도 있지요.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늘 우리에게 있는 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로 물컵과 욕조를 통해서이지요.
그림책이 시작될 때, 아이가 “물, 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이제 아이는 마지막 장에서 물을 불러 인사를 했던 진짜 이유를 드러냅니다. “물, 고마워!”하고 말이지요. 아이에게 물은 신비롭고(바다), 나에게 웃음 지으며(이슬방울), 또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눈송이). 아이는 이러한 물이 고맙습니다.
그림책의 맨 뒤에는 세 가지 주제에 대한 부가 설명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액체, 고체, 기체의 ‘다양한 물의 상태’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림책 본문에서는 문장이 매우 간결하고 한 장면에 하나씩 제시되는 핵심어도 비교적 쉬운 어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액체, 기체, 고체와 같은 용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림책 뒤에 제시된 설명에서는 물이 언제 액체, 고체, 기체 상태가 되는지 그러한 상태들은 각각 어떤 특성을 지니는지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두번째 주제는 ‘물의 순환 과정’에 대한 것입니다. 강이나 호수, 바다와 같은 물은 증발하여 하늘에서 응결되고, 비나 눈과 같은 강수가 되어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골짜기를 타고 내려와 물이 한 곳에 모이면 다시 물이 증발되면서 물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한 눈에 보기 쉽게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세 번째 주제는 ‘물을 아껴 써요!’입니다. 지구 전체의 물의 양과 바닷물과 민물의 비율,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물의 비율을 알려주고, 물을 아껴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려줍니다.
이 그림책은 간결한 글과 단순한 그림으로 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장면마다 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넣는 대신, 대표적인 낱말 하나를 큼직한 글씨로 제시하고 물에게 말을 거는 듯 짧은 글을 제시하여 글과 그림이 깔끔하게 잘 어우러집니다. 또한 비교적 쉬운 언어로 풀어내고 있어 유아 연령에서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그림책 뒷부분에 부연 설명이 제시되기에 초등 저학년 연령까지도 물에 대한 지식을 유용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물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 뿐 아니라 물을 친근하게 또 감사한 마음으로 대하는 화자의 태도가 인상적입니다.
정보책에는 사실적인 지식만 담겨 있을까요? 작가의 세계관은 이야기책에만 담기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야기책과 마찬가지로 정보책에도 작가의 세계관이 담깁니다. 작가들은 어떤 내용의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제시할지 고민합니다. 특히 정보의 내용을 선정하고 구성할 때 작가가 그 정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가 드러납니다. 같은 주제의 정보책이라도 작가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는지에 따라 무척 다른 형태와 내용의 책이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꼬마 곰’ 그림책 시리즈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가 프랭크 애시의 <물 이야기>를 비교해서 살펴볼까요? 이 그림책에는 장면마다 한 문장 정도의 글이 배치되어 글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편의 시를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물 이야기>에서 ‘물’은 빗방울이고 이슬이며, 얼음이고 눈송이입니다. 물은 하늘 높은 곳에도 있고, 땅속 깊은 곳에도 있으며, 냇물, 강물, 폭포, 연못, 호수입니다. 물속에서 고기들은 숨을 쉬고, 물을 먹고 꽃들이 자라납니다. 눈물 한 방울도, 거대한 호수도 물이며, 긴 강물이 되어 마침내 바다로 흘러갑니다. 이 책에는 다양한 물의 상태(성질)와 순환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지만 <안녕, 물!>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안녕, 물!>에서 화자가 물에게 인사를 건네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과는 달리, <물 이야기>에서는 대체로 물을 ‘물질’로서 접근하는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물 이야기>의 글에는 화자가 드러나지 않지만 그림에는 작은 아이가 등장해서 종이배를 띄우거나 큰 배를 타거나 물이 없어 시든 꽃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만, 물과 친근한 관계를 맺는 양상은 아닙니다.
또 다른 예로 가코 사토시 글, 스즈키 마모루 그림의 <물은 정말 대단해!>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책은 앞서 살펴본 <안녕, 물!>이나 <물 이야기>보다 글이 훨씬 많습니다. 그만큼 물에 대한 폭넓은 정보가 들어 있지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물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고, 또 물은 모양이나 성질이 바뀌곤 합니다.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이 꼭 필요하며, 몸속에서 물은 혈액과 림프액을 만들고 또 땀과 오줌이 되어 몸 밖으로 배출되기도 합니다. 물은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만드는 요리사 같기도 하고, 병을 막아주는 의사 같기도 하며, 자연에서는 여러 모양으로 순환하며 온도를 조절하기에 참으로 근사하고 대단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물의 대단한 능력을 강조하느라 자칫 물을 인간보다 우위에 놓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물은 지구의 생물 모두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잘못해서 바다와 강을 더럽히게 되면 물이 애써서 해 온 일들을 망치게 된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지구에 사는 생물의 하나로서’ 어린 독자들에게 바다와 강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합니다. 물론, 물은 매우 소중한 자원이고 우리들은 당연히 물을 비롯한 자연을 잘 돌보고 지구를 건강하게 지켜 나갈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자연에 대해 청지기적인 사명을 갖는 것’과 ‘지구에 사는 생물의 하나로서 오염을 방지하는 것’은 (꽤 비슷해 보이지만) 단연코 다릅니다. 특히 이 책의 면지를 보면 작가의 세계관을 분명히 마주하게 되지요. 면지 그림에는 물의 순환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 세상의 생물들이 처음에 물에서 시작되었으며, 진화를 거쳐 사람들도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문명도 발전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같은 주제를 다루는 정보책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림책의 글과 그림에서, 또 정보의 내용이나 구성 방식, 정보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통해서 작가의 세계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자녀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 지적 호기심을 보이고 탐구하고자 할 때 우리는 정보가 많이 담겨있는 책만 고를 것이 아니라, 바른 정보나 세계관이 담겨 있는 책을 권해 주거나 혹은 정보책을 함께 읽으며 책 속에 담긴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도록 안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보를 그저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정보를 얻는 것, 정보를 바른 세계관으로 바라볼 줄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한, 우리 자녀들에게 키워줘야 할 힘이 아닐까요?
작가 소개
<안녕, 물!>을 지은 앙트아네트 포티스는 미국 UCLA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디자인 및 광고 분야와 디즈니사에서 일했습니다. 지금은 어린 시절의 꿈인 그림책 작가가 되어 열심히 그림책을 만들고 있지요.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펭귄 이야기>, <이건 상자가 아니야>, <이건 막대가 아니야>, <안녕? 유치원>, <엄마, 잠깐만!> 등이 있습니다. 작가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작가와 작품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홈페이지_ antoinetteportis.com
본문에서 함께 살펴본 그림책
『물 이야기』 (프랭크 애시 글, 그림, 보림, 1996)
: 이 책의 작가 프랭크 애시는 미국의 어린이책 작가로 60권 이상의 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생일 축하해요, 달님!>을 비롯한 꼬마곰 그림책 시리즈가 유명하지요. <물 이야기>의 그림은 꼬마곰 시리즈와는 다른 스타일로 그려졌는데, 테두리 선 없이 면으로 형태가 나타나고 있으며 파스텔 톤의 알록달록한 여러 색이 섞여서 쓰여서 부드러우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글은 간결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그림은 정보를 더 구체화하며 앞뒤 장면을 이어주면서 글보다 더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공합니다. 따라서 아직 글자를 읽지 못하는 어린 연령의 독자들도 물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물은 정말 대단해!』 (가코 사토시 글, 스즈키 마모루 그림, 비룡소, 2020)
: 글 작가인 가코 사토시는 공학 박사이자 기술사가 되어 민간화학회사연구소에서 일했는데, 이때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연극을 했던 경험이 아동문화 연구자로 일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작가, 뉴스 진행자, 대학 강사와 아동문화 연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500권 이상의 어린이책에 글을 썼습니다. 이 책은 작가가 지병으로 책상에 앉기 어려운 와중에 직접 밑그림도 그리고 침대에서 원고를 확인하며 정성껏 만든 작가의 마지막 책입니다.
이 책은 표지에서부터 다양한 그림이 제시되며 많은 읽을 거리,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우리는 물을 마실 수 있고, 물속에서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며, 물은 순환합니다. 또 물은 투명하고, 액체와 기체 등 다양한 상태로서 존재하지요. 이렇듯 이 책에는 물에 관한 상당히 방대한 양의 정보가 글과 그림으로 풍성하게 제시됩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물이 얼마나 유용한지, 물은 어떤 성질을 띠는지, 자연에서 물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만 앞뒤 면지에 제시된 그림은 자연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 중 하나인 진화론이 압축적으로 표현돼 있습니다. 진화론은 자연과 생물체의 탄생과 역사에 대한 여러 가설 중 하나라는 것을 어린 독자들에게 알려주어서 자연 과학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기독교 가정에서는 토론이 가능한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 연령의 자녀들이 성경적인 관점에서 진화론과 대비되는 창조론을 바탕으로 하여 이 책을 만든 작가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 안녕, 물!
- 그림작가 앙트아네트 포티스
- 글작가 앙트아네트 포티스
- 번역 이종원
- 페이지 40 쪽
- 출판사 행복한그림책
- 발행일 2019-04-15
| 김현경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교육학과 the PLACE 연구소에서 Visiting Scholar를 지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미디어에 담긴 세계관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
물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 『안녕, 물!』
혹시 여러분은 자연에게 “안녕?”하고 말을 걸어본 적이 있나요? 저는 종종 그렇게 인사를 한답니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다가 봄 냄새를 맡고 쏘옥 새 줄기를 밀어 올린 수선화가 기특해서, 혹은 밤새 요란하게 내리던 비가 잦아들고 말갛게 얼굴을 드는 해가 반가워서, 아이에게 말을 걸듯 인사를 건넬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한 여자아이가 물안경을 쓰고 물속에서 빙긋 웃으며 ‘물’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 물!”하고 말이지요.
앙트아네트 포티스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그림책 <안녕, 물!>은 아이의 목소리로 물에 대한 정보를 들려주는 정보 그림책입니다. 아이는 물에게 친근하게 인사하며 나는 너를 잘 안다고, 물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합니다. 표지에서부터 아이는 물안경을 쓰고 물 속에서 기분 좋은 표정으로 독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 함께 물을 만나러 가요!’하고 말을 거는 것만 같지요. 물결이 일렁이는 면지를 지나면 표제지에서 아이는 욕조 안에 있습니다. 그 다음장부터 본문이 시작되는데 전체적으로 물에 대한 정보 구성은 1) 도구를 통해 만날 수 있는 물, 2) 장소에 따라 만날 수 있는 물, 3) 액체, 기체, 고체와 같은 상태에 따라 만날 수 있는 물, 4) 생명체 속에 있거나 우리 가까이에 있는 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도구’를 통해 물을 만나볼까요? 우리가 목마를 때 컵에 담을 수 있도록 수도꼭지에 물이 있습니다. 또 정원의 스프링클러와 욕실의 샤워기, 호스에도 있지요. 아이가 언급한 수도꼭지와 스프링클러, 샤워기, 호스는 물이 나오게끔 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데 어떤 도구(통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물은 아래에서 위로 뿜어져 나오기도 하고, 위에서 아래로 뿌려지기도 합니다. 또 콸콸 나오거나 줄줄 흐르기도 합니다. 작가는 위와 아래의 개념, 직선과 곡선의 개념을 많은 글로 설명하는 대신 자연스레 그림속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물은 다양한 ‘장소’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물은 굽이굽이 흐르는 개울과 강에도 있고, 바다에도 있습니다. 작가는 개울, 강, 바다를 어떤 순서와 방법으로 제시할지를 섬세하게 구성하여 글의 부연 설명 없이 그림만으로도 점층의 개념을 생각해 보게 해 줍니다. 호스의 곡선과 유사하게 개울의 그림을 제시할 때에는 호스 그림보다 좀 더 높은 시점에서 좀 더 두터워진 물줄기를 그리고, 강의 그림을 제시할 때에는 개울보다 좀 더 높이 있는 시점에서 제법 넓어진 강줄기를 그립니다. 바다의 경우에는 펼침면을 꽉 채워 넘실대는 파도와 고래를 그림으로써 끝없이 펼쳐지는 것만 같은 광활한 바다를 표현합니다.
이제 물은 점강의 개념으로 점점 작아집니다. 광활한 바다에서 조금 낮아진 시점으로 둥근 호수를 설명하고, 다시 좀 더 낮아진 시점으로 수영장을 설명하며, 또다시 좀 더 낮아진 시점으로 작은 물웅덩이를 그립니다. 사람들은 호수에 배를 띄우기도 하고,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고 놀며, 물웅덩이에서 발을 구르기도 합니다. 물은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만날 수 있고, 사람들은 물이 있는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물은 크기나 모양이 변할 뿐만 아니라 상태(성질)가 변하기도 합니다. 이른 아침 풀잎 끝에 있는 이슬 방울도 물이고, 뺨을 타고 조용히 흘러내리는 눈물 방울도 물입니다. 때로는 큰 소리로 울며 쏟아져 내리는 빗방울도 물이지요. 앞에서 설명한 물은 모두 ‘액체’이지만, 물이 항상 액체의 상태인 것은 아닙니다. 주전자 입구 끝에서 화난 듯 씩씩거리다가 휘파람을 불며 뿜어져 나오는 김, 하늘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 온 세상을 꼭꼭 숨겨 버리는 안개는 ‘기체’입니다. 바위처럼 꽁꽁 얼어붙은 얼음덩어리나 바다 위의 빙산, 스케이트장과 눈은 ‘고체’이지요.
사실, 물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 있습니다. 눈사람 안에도 있고, 진짜 사람 안에도 있으며, 동식물 안에도 있지요.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늘 우리에게 있는 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로 물컵과 욕조를 통해서이지요.
그림책이 시작될 때, 아이가 “물, 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이제 아이는 마지막 장에서 물을 불러 인사를 했던 진짜 이유를 드러냅니다. “물, 고마워!”하고 말이지요. 아이에게 물은 신비롭고(바다), 나에게 웃음 지으며(이슬방울), 또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눈송이). 아이는 이러한 물이 고맙습니다.
그림책의 맨 뒤에는 세 가지 주제에 대한 부가 설명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액체, 고체, 기체의 ‘다양한 물의 상태’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림책 본문에서는 문장이 매우 간결하고 한 장면에 하나씩 제시되는 핵심어도 비교적 쉬운 어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액체, 기체, 고체와 같은 용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림책 뒤에 제시된 설명에서는 물이 언제 액체, 고체, 기체 상태가 되는지 그러한 상태들은 각각 어떤 특성을 지니는지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두번째 주제는 ‘물의 순환 과정’에 대한 것입니다. 강이나 호수, 바다와 같은 물은 증발하여 하늘에서 응결되고, 비나 눈과 같은 강수가 되어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골짜기를 타고 내려와 물이 한 곳에 모이면 다시 물이 증발되면서 물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한 눈에 보기 쉽게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세 번째 주제는 ‘물을 아껴 써요!’입니다. 지구 전체의 물의 양과 바닷물과 민물의 비율,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물의 비율을 알려주고, 물을 아껴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려줍니다.
이 그림책은 간결한 글과 단순한 그림으로 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장면마다 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넣는 대신, 대표적인 낱말 하나를 큼직한 글씨로 제시하고 물에게 말을 거는 듯 짧은 글을 제시하여 글과 그림이 깔끔하게 잘 어우러집니다. 또한 비교적 쉬운 언어로 풀어내고 있어 유아 연령에서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그림책 뒷부분에 부연 설명이 제시되기에 초등 저학년 연령까지도 물에 대한 지식을 유용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물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 뿐 아니라 물을 친근하게 또 감사한 마음으로 대하는 화자의 태도가 인상적입니다.
정보책에는 사실적인 지식만 담겨 있을까요? 작가의 세계관은 이야기책에만 담기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야기책과 마찬가지로 정보책에도 작가의 세계관이 담깁니다. 작가들은 어떤 내용의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제시할지 고민합니다. 특히 정보의 내용을 선정하고 구성할 때 작가가 그 정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가 드러납니다. 같은 주제의 정보책이라도 작가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는지에 따라 무척 다른 형태와 내용의 책이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꼬마 곰’ 그림책 시리즈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가 프랭크 애시의 <물 이야기>를 비교해서 살펴볼까요? 이 그림책에는 장면마다 한 문장 정도의 글이 배치되어 글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편의 시를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물 이야기>에서 ‘물’은 빗방울이고 이슬이며, 얼음이고 눈송이입니다. 물은 하늘 높은 곳에도 있고, 땅속 깊은 곳에도 있으며, 냇물, 강물, 폭포, 연못, 호수입니다. 물속에서 고기들은 숨을 쉬고, 물을 먹고 꽃들이 자라납니다. 눈물 한 방울도, 거대한 호수도 물이며, 긴 강물이 되어 마침내 바다로 흘러갑니다. 이 책에는 다양한 물의 상태(성질)와 순환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지만 <안녕, 물!>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안녕, 물!>에서 화자가 물에게 인사를 건네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과는 달리, <물 이야기>에서는 대체로 물을 ‘물질’로서 접근하는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물 이야기>의 글에는 화자가 드러나지 않지만 그림에는 작은 아이가 등장해서 종이배를 띄우거나 큰 배를 타거나 물이 없어 시든 꽃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만, 물과 친근한 관계를 맺는 양상은 아닙니다.
또 다른 예로 가코 사토시 글, 스즈키 마모루 그림의 <물은 정말 대단해!>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책은 앞서 살펴본 <안녕, 물!>이나 <물 이야기>보다 글이 훨씬 많습니다. 그만큼 물에 대한 폭넓은 정보가 들어 있지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물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고, 또 물은 모양이나 성질이 바뀌곤 합니다.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이 꼭 필요하며, 몸속에서 물은 혈액과 림프액을 만들고 또 땀과 오줌이 되어 몸 밖으로 배출되기도 합니다. 물은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만드는 요리사 같기도 하고, 병을 막아주는 의사 같기도 하며, 자연에서는 여러 모양으로 순환하며 온도를 조절하기에 참으로 근사하고 대단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물의 대단한 능력을 강조하느라 자칫 물을 인간보다 우위에 놓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물은 지구의 생물 모두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잘못해서 바다와 강을 더럽히게 되면 물이 애써서 해 온 일들을 망치게 된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지구에 사는 생물의 하나로서’ 어린 독자들에게 바다와 강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합니다. 물론, 물은 매우 소중한 자원이고 우리들은 당연히 물을 비롯한 자연을 잘 돌보고 지구를 건강하게 지켜 나갈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자연에 대해 청지기적인 사명을 갖는 것’과 ‘지구에 사는 생물의 하나로서 오염을 방지하는 것’은 (꽤 비슷해 보이지만) 단연코 다릅니다. 특히 이 책의 면지를 보면 작가의 세계관을 분명히 마주하게 되지요. 면지 그림에는 물의 순환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 세상의 생물들이 처음에 물에서 시작되었으며, 진화를 거쳐 사람들도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문명도 발전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같은 주제를 다루는 정보책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림책의 글과 그림에서, 또 정보의 내용이나 구성 방식, 정보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통해서 작가의 세계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자녀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 지적 호기심을 보이고 탐구하고자 할 때 우리는 정보가 많이 담겨있는 책만 고를 것이 아니라, 바른 정보나 세계관이 담겨 있는 책을 권해 주거나 혹은 정보책을 함께 읽으며 책 속에 담긴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도록 안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보를 그저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정보를 얻는 것, 정보를 바른 세계관으로 바라볼 줄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한, 우리 자녀들에게 키워줘야 할 힘이 아닐까요?
작가 소개
<안녕, 물!>을 지은 앙트아네트 포티스는 미국 UCLA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디자인 및 광고 분야와 디즈니사에서 일했습니다. 지금은 어린 시절의 꿈인 그림책 작가가 되어 열심히 그림책을 만들고 있지요.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펭귄 이야기>, <이건 상자가 아니야>, <이건 막대가 아니야>, <안녕? 유치원>, <엄마, 잠깐만!> 등이 있습니다. 작가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작가와 작품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홈페이지_ antoinetteportis.com
본문에서 함께 살펴본 그림책
『물 이야기』 (프랭크 애시 글, 그림, 보림, 1996)
: 이 책의 작가 프랭크 애시는 미국의 어린이책 작가로 60권 이상의 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생일 축하해요, 달님!>을 비롯한 꼬마곰 그림책 시리즈가 유명하지요. <물 이야기>의 그림은 꼬마곰 시리즈와는 다른 스타일로 그려졌는데, 테두리 선 없이 면으로 형태가 나타나고 있으며 파스텔 톤의 알록달록한 여러 색이 섞여서 쓰여서 부드러우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글은 간결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그림은 정보를 더 구체화하며 앞뒤 장면을 이어주면서 글보다 더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공합니다. 따라서 아직 글자를 읽지 못하는 어린 연령의 독자들도 물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물은 정말 대단해!』 (가코 사토시 글, 스즈키 마모루 그림, 비룡소, 2020)
: 글 작가인 가코 사토시는 공학 박사이자 기술사가 되어 민간화학회사연구소에서 일했는데, 이때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연극을 했던 경험이 아동문화 연구자로 일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작가, 뉴스 진행자, 대학 강사와 아동문화 연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500권 이상의 어린이책에 글을 썼습니다. 이 책은 작가가 지병으로 책상에 앉기 어려운 와중에 직접 밑그림도 그리고 침대에서 원고를 확인하며 정성껏 만든 작가의 마지막 책입니다.
이 책은 표지에서부터 다양한 그림이 제시되며 많은 읽을 거리,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우리는 물을 마실 수 있고, 물속에서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며, 물은 순환합니다. 또 물은 투명하고, 액체와 기체 등 다양한 상태로서 존재하지요. 이렇듯 이 책에는 물에 관한 상당히 방대한 양의 정보가 글과 그림으로 풍성하게 제시됩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물이 얼마나 유용한지, 물은 어떤 성질을 띠는지, 자연에서 물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만 앞뒤 면지에 제시된 그림은 자연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 중 하나인 진화론이 압축적으로 표현돼 있습니다. 진화론은 자연과 생물체의 탄생과 역사에 대한 여러 가설 중 하나라는 것을 어린 독자들에게 알려주어서 자연 과학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기독교 가정에서는 토론이 가능한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 연령의 자녀들이 성경적인 관점에서 진화론과 대비되는 창조론을 바탕으로 하여 이 책을 만든 작가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김현경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교육학과 the PLACE 연구소에서 Visiting Scholar를 지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미디어에 담긴 세계관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