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품을 내어주는 삶, 『선인장 호텔』

202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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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품을 내어주는 삶, 『선인장 호텔』





정보책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책입니다. 그러나 정보만 많이 나열되어 있는 책이 곧 좋은 정보책은 아닙니다. 정보책의 저자는 독자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를 설득력 있고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정성껏 정돈합니다. 좋은 정보책은 독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줄 뿐만 아니라 심미감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깊은 통찰과 감동을 줍니다. 그런 감동을 주는 정보책은 시간이 흘러도 독자들의 마음 속에 여운을 남겨 다시 보고 싶게끔 합니다. 이미 책을 읽음으로써 원하는 정보를 얻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계속해서 보고싶어지는 그런 책. 오늘은 그런 책 중의 한 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브렌다 기버슨이 글을 쓰고, 메건 로이드가 그림을 그린 <선인장 호텔>은 1991년에 미국에서처음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1995년에 번역 소개되었습니다. 3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읽히는 이 책은 정보책 중의 고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의 표지에는 사와로 선인장의 그림을 중심으로 사각 테두리 안에 토끼, 박쥐, 딱따구리, 도마뱀, 뱀, 전갈 등 여러 동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이 책에 등장하는 사막 동물들입니다. 저는 사실 ‘사막’이란 말을 들으면 황량한 모래 바람이 연상되어 사막에 이렇게 다양한 동물이 살아가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 사막 동물들과 사와로 선인장은 어떤 관계일까요? 사각 테두리 그림과 커다란 사와로 선인장 그림 사이에 있는 이 책의 제목이 이들의 관계를 알려줍니다. ‘선인장 호텔’. 그렇습니다. 선인장은 호텔이고, 사막 동물들은 이 호텔에 투숙하는 손님들입니다. 사와로 선인장이 호텔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볼까요?

이야기는 뜨겁고 메마른 사막의 어느 날, 사와로 선인장의 빨간 열매로부터 시작됩니다. 빨간 열매 하나가 모래 위로 툭 떨어지자 까만 씨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사막쥐 한 마리가 그 열매를 먹고 종종종 사라지는데 쥐의 수염에 붙었던 씨 한 알이 팔로버드 나무 밑에 떨어집니다. 점박이 사막 다람쥐의 눈에도, 방울새의 눈에도 띄지 않을 만큼 작은 씨앗 하나는 비를 맞고 땅 위로 새싹을 비죽 올립니다. 어린 사와로 선인장은 팔로버드 나무가 뜨거운 여름 볕과 추운 겨울 밤을 지켜준 덕분에 조금씩 조금씩 자라납니다. 십 년이 지나자 선인장은 엄마 손 한 뼘 크기가 되고, 이십 오 년이 지나자 다섯 살 어린이 키만 해 집니다. 


오십 년이 지나자 선인장은 이제 엄마 키 두 배만큼 자라 팔로버드 나무 옆에 늠름하게 서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선인장 꽃의 꿀을 먹기 위해 새와 벌, 박쥐들이 계속해서 모여듭니다. 꽃이 지고 선인장에 열매가 달리자 도마뱀 무늬 딱따구리가 열매를 먹으러 왔다가 안전하고 먹이가 많은 이 선인장에서 살기로 합니다. 선인장이 호텔이 되고, 딱따구리가 첫 손님이 된 것입니다. 딱따구리가 딱딱딱! 선인장에 깊숙이 구멍을 파고 넓은 방을 만듭니다. 다행히 딱따구리가 판 구멍 끝에 새 껍질이 생겨서 선인장의 물기가 마르지 않았고, 딱따구리는 더운 낮에도 추운 밤에도 너끈히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또, 딱따구리가 해로운 벌레를 잡아먹어 선인장에게도 좋은 일이었습니다. 

육십 년이 지나자 선인장 호텔은 이제 아빠 키 세 배만큼 자랐습니다. 옆에서 큰 가지도 뻗어 나왔습니다. 비둘기, 올빼미 등 손님들도 늘어갑니다. 백오십 년이 지나자 선인장은 아빠 키 열 배만큼 커지고 무게는 팔천 킬로그램이나 되었습니다. 선인장은 더 이상 자라지 않지만, 크고 작은 구멍이 수없이 생겨서 새와 사막쥐, 곤충과 박쥐 등 많은 사막 동물들이 지냅니다.

이백 년이 지나자 마침내 선인장 호텔은 거센 바람에 휩쓸려 쿵! 하고 쓰러집니다. 선인장 호텔의 높은 곳에서 살던 동물들은 이제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갔지만, 낮은 곳에 사는 동물들- 지네, 전갈 개미들이 쓰러진 선인장 호텔의 새 손님으로 찾아옵니다. 이제 사와로 선인장은 줄기의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그저 허무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동안 선인장 호텔에서 많은 사막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었고, 이제는 쓰러진 사와로 선인장의 주변으로 선인장 숲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이 가운데 몇은 여러 날을 견뎌 내고 또 다른 선인장 호텔이 될 것입니다.

작가는 선인장을 호텔에 비유할 뿐만 아니라, 선인장 꽃이 새들에게 손짓하는 것으로, 동물들이 이사를 오가는 것으로, 또 달콤한 열매 잔치에 동물들을 초대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독자는 그림책의 글을 읽어 나가면서 식물이 아닌,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선인장에게서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라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팔로버드 나무의 보호를 받으며 아주 조금씩 천천히 자라나지만 인내의 시간을 거쳐 꾸준히 성장한 끝에 이제는 여러 사막 동물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모습은 자식을 품에 품는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을 연상하게 합니다. 또한, 거대한 선인장이 쓰러진 주변에 선인장 숲이 생겨난 것을 보며 나는 지금 나의 자리에서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선인장이 기꺼이 사막 동물들에게 품을 내어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 주변에 많은 어린 선인장들을 자라나게 한 모습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잠잠히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 책은 선인장의 크기를 엄마 손 한 뼘 크기라든지, 다섯 살 어린이 키만 하다든지, 아빠 키 세 배 만큼과 같이 표현함으로써 선인장에 대한 정보가 어린 독자들에게도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섬세하게 묘사된 그림은 실물 사진이 주지 못하는 또 다른 여운을 자아내며 이야기와 잘 어우러집니다. 선인장의 생태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도 우리 삶에 통찰을 주고 감동적인 여운을 주는 것이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일 것입니다.

이 책에 글을 쓴 브렌다 기버슨은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연구하고 정글을 탐험하는 상상을 하며 자라났습니다. 워싱턴 대학교에서 영어와 미술을 공부하고, 자녀가 어릴 때 학교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어린이책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30년 이상 어린이책을 만들고 있는 작가는 언어와 예술의 아름다움을 우리 주변 세계와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으로는 <내가 최고 공룡이야>, <저어새와 악어>, <바다거북의 여행> 등이 있습니다. 작가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풍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브렌다 기버슨의 홈페이지 http://www.brendazguiberson.com

그림을 그린 메건 로이드는 40권 이상의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작가는 <선인장 호텔>의 글을 읽고 애리조나에 있는 사와로 기념지를 직접 찾아가 선인장의 생생한 모습을 그림으로 담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펜실베니아에서 남편과 함께 양과 닭, 소를 키우는 농장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와로 선인장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애리조나의 사와로 기념 공원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세요. 다양하고 생생한 사진 자료와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사와로 기념 공원 홈페이지 https://www.nps.gov/sagu/index.htm



김현경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교육학과 the PLACE 연구소에서 Visiting Scholar를 지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미디어에 담긴 세계관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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