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자유를 향한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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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풀턴(Kristen Fulton)이 쓰고 토르벤 쿨만(Torben Kuhlmann)이 그린 <자유를 향한 탈출>은 독일이 베를린 장벽을 사이에 두고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어 있던 시절, 자유를 찾아 동독을 탈출한 베첼(Wetzel) 가족의 실제 이야기를 그린 그림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동독을 탈출하려고 시도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이 책은 자유를 향한 생명을 건 베첼 가족의 경이로운 인내심과 은밀하게 진행된 탈출 계획의 시작부터 준비과정, 그리고 가슴 벅찬 탈출의 순간까지 치열했던 순간순간이 자세히 담겨 있다.
자유를 향한 탈출
베첼 가족은 1년여에 걸친 준비 끝에 직접 제작한 열기구를 타고 동독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베첼이 열기구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은 여동생으로부터 받은 국제 열기구 축제 사진 한 장이 전부였지만, 물리학과 수학을 동원하여 매달 나일론 천을 2~3미터씩, 매주 연료를 10리터씩 사들였다. 그리고 밤마다 재봉틀로 소리 나지 않게 지름 18미터, 높이 27미터의 열기구를 만들어 나갔다. 당시 그의 아들들은 7살, 3살이었고, 탈출 순간까지 발각되지 않는다 해도 갖가지 사고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무모해 보이는 탈출 계획이었다. 그럼에도 베첼이 목숨 걸고 동독을 탈출한 이유는 단 하나, ‘자유'를 위해서였다. 두 아들에게 자유의 삶을 살게 해주고 싶은, 생명을 건 부모의 의지였다.
무모해 보이는 탈출 계획이었다. 그럼에도 베첼이 목숨 걸고 동독을 탈출한 이유는 단 하나, ‘자유'를 위해서였다. 두 아들에게 자유의 삶을 살게 해주고 싶은, 생명을 건 부모의 의지였다.
같은 민족, 같은 나라였던 동독과 서독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은 승리한 연합국들 사이에서 분리되어 동쪽은 소련이, 서쪽은 영국, 미국, 프랑스가 분할 통치하기로 정해졌다. 서독은 자유시장경제-자본주의를 채택함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동독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채택함으로 공산주의 체제가 되었다. 1,448킬로미터의 콘크리트와 철로 된 장벽이 세워지고, 동독인들의 삶은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변했다. 서독의 아이들은 만화를 보고 청바지를 입고 피자를 먹었는데, 동독의 아이들은 따끔거리는 제복을 입고, 1년에 한 번씩 바나나를 먹기 위해 긴 줄을 섰다. 매일 밤 9시가 되면 동독의 모든 집에 불을 끄도록 법으로 제정되었다. 상품이 규제되었기 때문에, 옷에서 음식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소유물을 가져야 했고, 방송국은 동독을 지지하는 채널로 국한되어 언론의 자유가 통제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사실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인공위성 사진 한 장이 말해주듯이 북한과 남한, 현재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체제의 북한 주민들은 자유를 빼앗기고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고, 자본주의 체제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있다. 같은 민족, 같은 나라였던 남한과 북한의 차이는 ‘자유’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체제의 변화 한 가지였다.
공산주의 체제의 북한 주민들은 자유를 빼앗기고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고, 자본주의 체제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있다. 같은 민족, 같은 나라였던 남한과 북한의 차이는 ‘자유’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체제의 변화 한 가지였다.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초월적 가치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자유'다. 인류 역사는 곧 자유를 획득해 온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던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수백만 명의 피와 생명을 바쳐 쟁취한 자유이거나, 생명을 바쳐도 끝내 누리지 못한 자유였다. 우리 세대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유의 유산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자유가 아니기에 ‘자유’가 무엇인지, ‘자유'를 지킨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국민 의식도 낮고, 지식도, 철학도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해 준 이들에 대한 감사를 잊고, ‘자유'의 소중함마저 잊고 사는 듯하다. 생명을 걸고 ‘자유'를 되찾은 베첼 가족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누가 ‘자유’를 지킬 것인가?
자유를 논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상적, 윤리적, 역사적 측면에서 올바른 지식을 정립해야 비로소 ‘자유 문명'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지난 문재인 정권이 추진한 헌법 개정 시도에서 '자유 시장경제' 대신 '평등한 민주 사회'가 헌법 전문에서 강조됐다. 경제적 자유와 재산권을 제약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끌고 가는 것이 개헌의 목표인 듯했다. 많은 국민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조금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이야기’ 정도로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그러나 지금 국가 체제를 위협하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연방제 통일로 가는 문을 여는 거짓된 평화주의자들과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반대한민국 주사파들이 노조, 언론, 교육, 정계 등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또한 좌경화된 사람들이 정치 요직에 앉기 시작했으며, 국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전국 읍,면,동의 마을 공동체가 ‘주민자치 기본법’을 통하여 공산화로 가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다.
좌경화된 사람들이 정치 요직에 앉기 시작했으며, 국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전국 읍,면,동의 마을 공동체가 ‘주민자치 기본법’을 통하여 공산화로 가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방심하는 순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치열한 체제 전쟁의 한복판이다. 누가 끝까지 ‘자유'를 지킬 것인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것은 국민 개개인이 공산주의의 거짓을 알아볼 뿐만 아니라, ‘자유'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추는 것이라고 믿는다. ‘자유’를 수호하고,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는 ‘자유'를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간곡한 마음으로 ‘자유'가 이 땅에 어떻게 심어졌는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리는 이 위대한 ‘자유'의 근원을 정리해 본다.
첫 번째, ‘자유’란 양도할 수 없는 천부 인권에서 기원한다.
누구도 뺏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천부 인권의 자유는 기록된 성경 외에는 찾아볼 수 없는 개념이다. 어떤 종교, 어떤 문헌에서도 개인의 존엄성과 개인에게 부여된 자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놀랍게도 창조주께서 주신 자유는 인간 스스로 영원한 지옥을 선택하는 것마저도 허락하신 자유다. 천부의 자유는 글자 그대로 하나님이 부여한 양도가 불가능한 자유이고, 누구도 뺒을 수 없는 자유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신 자유이다. 자유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특권이자 개인의 선택에 대한 완전한 책임을 물으시는 것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개인을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한 ‘자유’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만 해도 조선시대까지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자유를 경험하지 못했다. 임금을 섬기는 노예와 같은 삶을 살던 백성에게 ‘자유’가 선물처럼 주어졌고,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자유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발적 ‘노예’의 길을 자청하게 된다.
임금을 섬기는 노예와 같은 삶을 살던 백성에게 ‘자유’가 선물처럼 주어졌고,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자유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발적 ‘노예’의 길을 자청하게 된다.
두 번째, 종교의 자유를 위해 만들어진 자유민주주의 체제
한반도뿐만 아니라 유럽도 개인의 자유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교황과 사제가 아니면 성경을 읽을 수 없던 1300년대, 성경을 번역하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년경~1384년, 영국 기독교 신학자, 종교 개혁가)와 얀 후스(Jan Hus, 1372년경~1415년 7월 6일, 체코 기독교 신학자, 종교 개혁가)는 처참하게 화형 당했지만, 이들로부터 잉태된 ‘자유’의 의지는 1517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년~1546년, 독일 종교 개혁가)가 비텐베르크 대학교회 정문에 95개의 반박문을 게시하면서 종교개혁으로 폭발하게 된다. 루터는 소수의 성직자와 귀족만 읽을 수 있었던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고, 구텐베르크가 1445년 금속활자를 발명한 이후 급속도로 발달한 인쇄술 덕분에 마침내 일반인도 자유롭게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한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성경을 읽고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 앞에 ‘개인’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되고, 종교개혁 정신의 프로테스탄트(청교도) 신앙이 전 유럽에 퍼지게 된다. 이들은 신앙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저항하였으나 자유를 박탈당하고 억압받게 되자, 102명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떠나 ‘미국'이라는 나라를 건설한다. 미국 국부들은 ‘종교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신앙을 지킬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고민하여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를 만든다.
종교의 자유가 지켜지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표현의 자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신체의 자유, 직업 선택 및 거주 이전의 자유, 자유롭게 헌금하여 교회를 세우는 재산권의 자유 등등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모든 것이 불가능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자유의 나라이다. 즉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다.
미국 국부들은 ‘종교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신앙을 지킬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고민하여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를 만든다.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다.
종교개혁의 후예가 미국을 건국했고, 미국의 건국정신이 그대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의해 이 땅에 심어지게 되어, 대한민국은 자유의 땅으로 번영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한 서구 문명의 유대 기독교적 세계관의 ‘자유’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누리는 자유는 서구와 미국의 오랜 역사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보전하고 전수해 준 ‘자유’인 것이다.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해 준 선대의 위인들에게 존경심을 표해야 하고, 자유의 유산에 대해 감사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해주어야 한다.
세 번째, ‘자유대한민국'를 설계한 초대 대통령 이승만
이승만은 ‘예수교로 새로운 문명의 기초를 삼아야 한다'라는 것을 일찍이 한성감옥에서 깨달았다. 개개인이 가질 수 있는 종교의 자유가 문명의 기초가 되어야 함을 이해했다. 자유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에 기독교를 통해 ‘개인'의 가치를 깨닫고, ‘자유'를 알아보고, 바로 그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대한민국을 설계하기 위해 인생을 바친 한 사람의 선각자가 바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이승만은 천부인권의 자유를 "자유가 본래 우리의 물건이요, 남에게 청구할 것이 아니다"라고 정확하게 표현했다. 이승만이 마지막 유언처럼 남긴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는 말씀이 지금, 이 시대에 준엄하게 와닿는다. 다시는 자유를 위협하는 어떤 거짓에도 겁먹지 말고, 특히 공산주의라는 종의 멍에에 속지 말라는 간곡한 요청이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이 스스로 종의 길로 달려갈 듯 위태롭다. 한국 민주화 운동의 일부는 공산주의의 가짜 매력에 현혹되어 거짓말을 전파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의 길로 끌고 가고 있다. 이대로 ‘자유'를 놓치고 말 것인가? 진정한 ‘자유인'으로 거듭날 것인가? 그것은 각성된 국민 한사람 한 사람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에 달려 있다.
한국 민주화 운동의 일부는 공산주의의 가짜 매력에 현혹되어 거짓말을 전파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의 길로 끌고 가고 있다.
네 번째, ‘자유’는 ‘재산권’으로부터 시작한다
영국인들은 국가의 모든 것이 왕의 소유물이고, 개인은 재산을 가질 수 없다는 현실에 자유롭지 못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시대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 1632년~1704년, 잉글랜드 왕국, 철학자, 정치사상가)는 왕만 가지던 재산권에 도전하여 모든 시민은 사유재산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자유로운 인간의 핵심은 ‘재산권’이라는 충격적인 아이디어였다. 마침내 명예혁명을 통해 왕으로부터 개인의 ‘재산권'을 받아냈을 뿐만 아니라 왕만 휘두르던 권력도 제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왕이나 독재자의 뜻이 아닌 법에 의해 국가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법치도 세우게 된다.
개인이 정당하게 취득한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갖는 것은 자유의 가장 근원이 되는 기본 원칙이다. 경제적 자유가 없으면 실존적 자유가 있을 수 없다. 이익을 추구할 자유와 내가 얻은 것은 내 것이라는 기본 명제가 보장될 때 비로소 자유를 논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개방과 자유무역으로 자유로운 통상이 보장될 때 자유는 증진된다.
개인이 정당하게 취득한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갖는 것은 자유의 가장 근원이 되는 기본 원칙이다. 경제적 자유가 없으면 실존적 자유가 있을 수 없다.
다섯 번째, ‘노예’의 길로 가는 포퓰리즘
수백 년의 노예제와 차별을 이겨낸 미국의 건전한 흑인 가정들은 정부 복지를 일상적 삶으로 바꿔 놓은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빠른 속도로 해체되었고, 범죄율 또한 급증하게 되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지나친 복지는 국가에 대한 의존성을 키워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개인의 주체성과 도덕적 책임감과 판단 능력을 뺏어간다. 포퓰리즘을 추종하는 것은 자유를 포기하고 정치적, 경제적 노예의 삶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 또한 포퓰리즘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것을 강제로 빼앗아야 하기 때문에 개인에게 부여된 천부 인권과 재산권이라는 소중한 자유도 침해하게 된다.
경제적 자유가 없이는 정치적 자유가 있을 수 없고, 경제적 자유를 수호할 의지가 없는 자는 자유인이 아니다. 아르헨티나는 1980년대까지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5배였다. 그러나 좌파 정권의 포퓰리즘을 막아내지 못하고 국가로부터 돈을 받기 시작하자 내재된 노예 본성이 영혼을 잠식하여 이제는 전 국민이 영원히 노예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듯하다. 국가의 재정 건정성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국가신용등급이 낮아져 기업들의 자본조달에 어려움이 생기고, 기업이 어려워지면 고용이 이루어지지 않아 일자리가 줄고, 외국 투자가 사라지면서 아르헨티나의 수순을 밟게 된다. 베네수엘라 역시 단기적인 인기몰이 포퓰리즘 정책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당이 집권하면서 이미 좌경화된 국민들은 기꺼이 자유를 헌납했다. 우리나라도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를 쫓아가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국가의 미래나 애국심 따위는 없는 권력자들은 국가 빚이 기하급수로 늘어나도 권력에만 눈이 멀어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한다. 지원받은 국민들은 잠깐은 좋겠지만 결국 우리 아들, 손자들이 갚아야 할 돈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지원받아 써버린 돈은 미래 우리 아이들의 삶을 훔치고 국가를 망치는 행위가 된다. 1인당 25만 원을 주겠다며 국가 세금을 자기 돈인 듯 사용하여 표를 모으는 권력자나 대한민국을 빚의 늪에 빠뜨린 최악의 포퓰리즘 정권을 분별하지 못하고 눈이 가리어진 국민들은 부디 강을 건너기 전에 깨어나길 바란다.
베네수엘라 역시 단기적인 인기몰이 포퓰리즘 정책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당이 집권하면서 이미 좌경화된 국민들은 기꺼이 자유를 헌납했다. 우리나라도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를 쫓아가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여섯 번째,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자유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다. 조금 더 진지하게 질문해 보자.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조금 생각이 복잡해진다. 어쩌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부모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육체가 자라고, 마음이 성장하면서 독립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때가 되면 경제적인 독립과 동시에 정신적인 완전한 독립을 이루게 된다. 이젠 더 이상 부모님께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대한 책임을 지고,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인격의 자유인이 된 것이다.
진정한 자유인은 몸에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매일 콜라 마시고, 피자 먹고, 술 마시고, 마리화나를 피워대지 않는다. 진정한 자유인은 비정상적인 성욕과 성적 방종에 이끌리지 않는다. 건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자유인이고, 식단을 관리하고 삶을 절제하는 사람이 자유인이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행동규범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유한하고 타락한 인간 위에 엄연히 존재하는 초월적 도덕 기준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초월적 도덕법 안에서 자유의지를 발휘하며 개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일곱 번째, 가짜 자유를 분별해야 한다.
인권을 극대화한다는 명분으로 평등, 다양성, 포용성, 나다움 등으로 포장되어 있는 문화막시즘적 가짜 자유를 분별해야 한다. 이 '가짜 자유'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생명을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산모에게 있다는 자유이고, 흑인들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인 낙태를 여성 인권으로 둔갑시키는 자유이다. 또한 부부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기업과 근로자의 관계를 파괴하고 해체하는 자유이다. 결혼의 속성을 재정의하고, 남성과 여성만 있는 것이 아닌 수십 가지 제3의 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유이며, 결국 사회적으로 동성애, 포르노, 낙태, 매춘, 마약, 에이즈 등 범죄를 전파하는 자유다. 진짜 자유는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주는 자유이고, 가짜 자유는 나와 이웃을 타락시키고 죽이는 자유다.
문화막시즘적 자유는 역설적이게도 ‘다양성’의 이름으로 ‘획일성’을 추구한다. 개인적 다름을 허용하지 않기에 개인이 가진 소중한 자유를 제한한다. 내 매장에 게이나 트랜스젠더를 채용하지 않을 자유, 동성 커플을 위한 케이크를 제작하지 않을 자유, 동성 간 성행위는 에이즈 발병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가르칠 수 있는 자유를 빼앗는다.
문화막시즘적 자유는 역설적이게도 ‘다양성’의 이름으로 ‘획일성’을 추구한다. 개인적 다름을 허용하지 않기에 개인이 가진 소중한 자유를 제한한다.
자유에 대한 현실 사회의 적용은 이처럼 매우 구체적인 이슈와 맞물려 있다. 정부는 동성 커플에게도 결혼제도의 특권과 혜택을 똑같이 주어야 하는가? 낙태는 살해 행위인가? 음란물에 대한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가가? 공공도서관에서 어린이가 이용할 수 있는 자료에는 제한이 있어야 하는가? 빈곤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환경보호 규정은 어떠해야 하는가?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을 위한 정책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자유를 지킬 수 있는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덟 번째, ‘자유’는 성숙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단지 좋은 법을 만들고 좋은 정부를 갖는 것만으로는 결코 ‘자유’를 이루어갈 수 없다. 부패한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자유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한, 자유는 그저 공짜로 지켜지지 않는다.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을 떠받치는 도덕적 미덕을 세워나가는 성숙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전통과 권위있는 삶의 제도인 가족의 유대와 국가에 대한 애국심, 종교심, 용기, 질서, 절제와 같은 신중한 태도가 인간을 진정으로 자유롭고 문명적이고 품위 있는 삶을 살게 하는 기초 질서를 이룬다. 미래와 다음 세대의 삶은 생각하지도 않고, 눈먼 돈을 뿌리며 뱃속의 이익만 찾는 부패한 자, 범죄 혐의자, 전과자들이 정치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은 상식이다. 나쁜 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고, 정치 지도자가 되어서도 안된다.
아홉 번째, 자유대한민국의 사명
베첼 가족처럼 생명을 걸고 자유를 획득한 수많은 이야기를 가까이에 알고 있다. 바로 자유 대한민국에서 우리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탈북인 이야기이다. 북한 주민은 전지구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 유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서 반드시 북한에 자유를 전해야 한다. 공산주의가 될 운명에 처한 가난한 나라의 자유를 지키고자 이 땅에 생명을 바친 전 세계의 병사와 어머니들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이제는 우리 역시 자유를 전할 수 있는 성숙한 자유인이 되어야 하겠다.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인격과 정신을 세워가는 성화의 길과 같다. 이제 우리의 마지막 사명은 북한 주민에게 자유를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된 자유 대한민국의 자유는 열방을 향해 뻗어 갈 것이다.
북한 주민은 전지구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 유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서 반드시 북한에 자유를 전해야 한다.
마무리
충남과 서울의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었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육의 주체를 무너뜨리고 ‘가짜 자유’만 강조하여 일탈, 방종, 무질서를 방관하고 학생들에게 도덕과 책임감에 대한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는 악법이다. 이런 악법을 생산하는 자들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문화막시즘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문화 막시스트들이 그림책의 진리와 자유와 도덕을 훼손하는 것도 지켜볼 수만은 없다.
공무원이 많아지고 정부가 비대해진다는 것은 개인의 자유가 그만큼 축소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부에 의존하는 국민을 양산하는 게 아니라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국민을 양산하고자 한 시대를 이끌었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노예로 만들려는 법안을 경쟁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고, 국민들은 국가가 제공하는 거짓된 복지에 도취되고 있다. 개인의 양심과 도덕이 타락해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진정한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단 하나의 길은 자유의 길 뿐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묻어두었던 선대의 보물, 자유의 푯대,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유산을 이어 받아 진정한 자유와 번영을 이루고, 청년들이 뜨겁게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을 회복하여 자유의 바람을 일으키고, 청년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결국 북한 주민에게 씌운 종의 멍에도 해방하는 진정한 자유통일세대가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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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해영 | 그림책박물관 운영 그림책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그림책박물관' (picturebook-museum.com)을 운영하며, 그림책으로 생명을 살리는 매거진 '그림책 BASIC' (picturcebool-basic.com)을 통해 바른 성경적 세계관의 그림책을 연구하고 전하고 있으며, 좋은 그림책을 읽고 살펴볼 수 있는 'Cafe그림책박물관'이라는 북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자유를 향한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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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풀턴(Kristen Fulton)이 쓰고 토르벤 쿨만(Torben Kuhlmann)이 그린 <자유를 향한 탈출>은 독일이 베를린 장벽을 사이에 두고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어 있던 시절, 자유를 찾아 동독을 탈출한 베첼(Wetzel) 가족의 실제 이야기를 그린 그림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동독을 탈출하려고 시도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이 책은 자유를 향한 생명을 건 베첼 가족의 경이로운 인내심과 은밀하게 진행된 탈출 계획의 시작부터 준비과정, 그리고 가슴 벅찬 탈출의 순간까지 치열했던 순간순간이 자세히 담겨 있다.
자유를 향한 탈출
베첼 가족은 1년여에 걸친 준비 끝에 직접 제작한 열기구를 타고 동독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베첼이 열기구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은 여동생으로부터 받은 국제 열기구 축제 사진 한 장이 전부였지만, 물리학과 수학을 동원하여 매달 나일론 천을 2~3미터씩, 매주 연료를 10리터씩 사들였다. 그리고 밤마다 재봉틀로 소리 나지 않게 지름 18미터, 높이 27미터의 열기구를 만들어 나갔다. 당시 그의 아들들은 7살, 3살이었고, 탈출 순간까지 발각되지 않는다 해도 갖가지 사고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무모해 보이는 탈출 계획이었다. 그럼에도 베첼이 목숨 걸고 동독을 탈출한 이유는 단 하나, ‘자유'를 위해서였다. 두 아들에게 자유의 삶을 살게 해주고 싶은, 생명을 건 부모의 의지였다.
같은 민족, 같은 나라였던 동독과 서독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은 승리한 연합국들 사이에서 분리되어 동쪽은 소련이, 서쪽은 영국, 미국, 프랑스가 분할 통치하기로 정해졌다. 서독은 자유시장경제-자본주의를 채택함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동독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채택함으로 공산주의 체제가 되었다. 1,448킬로미터의 콘크리트와 철로 된 장벽이 세워지고, 동독인들의 삶은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변했다. 서독의 아이들은 만화를 보고 청바지를 입고 피자를 먹었는데, 동독의 아이들은 따끔거리는 제복을 입고, 1년에 한 번씩 바나나를 먹기 위해 긴 줄을 섰다. 매일 밤 9시가 되면 동독의 모든 집에 불을 끄도록 법으로 제정되었다. 상품이 규제되었기 때문에, 옷에서 음식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소유물을 가져야 했고, 방송국은 동독을 지지하는 채널로 국한되어 언론의 자유가 통제되었다.
자유를 논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상적, 윤리적, 역사적 측면에서 올바른 지식을 정립해야 비로소 ‘자유 문명'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지난 문재인 정권이 추진한 헌법 개정 시도에서 '자유 시장경제' 대신 '평등한 민주 사회'가 헌법 전문에서 강조됐다. 경제적 자유와 재산권을 제약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끌고 가는 것이 개헌의 목표인 듯했다. 많은 국민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조금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이야기’ 정도로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그러나 지금 국가 체제를 위협하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연방제 통일로 가는 문을 여는 거짓된 평화주의자들과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반대한민국 주사파들이 노조, 언론, 교육, 정계 등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또한 좌경화된 사람들이 정치 요직에 앉기 시작했으며, 국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전국 읍,면,동의 마을 공동체가 ‘주민자치 기본법’을 통하여 공산화로 가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다.
누구도 뺏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천부 인권의 자유는 기록된 성경 외에는 찾아볼 수 없는 개념이다. 어떤 종교, 어떤 문헌에서도 개인의 존엄성과 개인에게 부여된 자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놀랍게도 창조주께서 주신 자유는 인간 스스로 영원한 지옥을 선택하는 것마저도 허락하신 자유다. 천부의 자유는 글자 그대로 하나님이 부여한 양도가 불가능한 자유이고, 누구도 뺒을 수 없는 자유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신 자유이다. 자유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특권이자 개인의 선택에 대한 완전한 책임을 물으시는 것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개인을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한 ‘자유’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만 해도 조선시대까지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자유를 경험하지 못했다. 임금을 섬기는 노예와 같은 삶을 살던 백성에게 ‘자유’가 선물처럼 주어졌고,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자유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발적 ‘노예’의 길을 자청하게 된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유럽도 개인의 자유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교황과 사제가 아니면 성경을 읽을 수 없던 1300년대, 성경을 번역하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년경~1384년, 영국 기독교 신학자, 종교 개혁가)와 얀 후스(Jan Hus, 1372년경~1415년 7월 6일, 체코 기독교 신학자, 종교 개혁가)는 처참하게 화형 당했지만, 이들로부터 잉태된 ‘자유’의 의지는 1517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년~1546년, 독일 종교 개혁가)가 비텐베르크 대학교회 정문에 95개의 반박문을 게시하면서 종교개혁으로 폭발하게 된다. 루터는 소수의 성직자와 귀족만 읽을 수 있었던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고, 구텐베르크가 1445년 금속활자를 발명한 이후 급속도로 발달한 인쇄술 덕분에 마침내 일반인도 자유롭게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한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성경을 읽고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 앞에 ‘개인’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되고, 종교개혁 정신의 프로테스탄트(청교도) 신앙이 전 유럽에 퍼지게 된다. 이들은 신앙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저항하였으나 자유를 박탈당하고 억압받게 되자, 102명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떠나 ‘미국'이라는 나라를 건설한다. 미국 국부들은 ‘종교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신앙을 지킬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고민하여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를 만든다.
종교의 자유가 지켜지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표현의 자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신체의 자유, 직업 선택 및 거주 이전의 자유, 자유롭게 헌금하여 교회를 세우는 재산권의 자유 등등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모든 것이 불가능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자유의 나라이다. 즉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다.
종교개혁의 후예가 미국을 건국했고, 미국의 건국정신이 그대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의해 이 땅에 심어지게 되어, 대한민국은 자유의 땅으로 번영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한 서구 문명의 유대 기독교적 세계관의 ‘자유’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누리는 자유는 서구와 미국의 오랜 역사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보전하고 전수해 준 ‘자유’인 것이다.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해 준 선대의 위인들에게 존경심을 표해야 하고, 자유의 유산에 대해 감사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해주어야 한다.
이승만은 ‘예수교로 새로운 문명의 기초를 삼아야 한다'라는 것을 일찍이 한성감옥에서 깨달았다. 개개인이 가질 수 있는 종교의 자유가 문명의 기초가 되어야 함을 이해했다. 자유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에 기독교를 통해 ‘개인'의 가치를 깨닫고, ‘자유'를 알아보고, 바로 그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대한민국을 설계하기 위해 인생을 바친 한 사람의 선각자가 바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이승만은 천부인권의 자유를 "자유가 본래 우리의 물건이요, 남에게 청구할 것이 아니다"라고 정확하게 표현했다. 이승만이 마지막 유언처럼 남긴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는 말씀이 지금, 이 시대에 준엄하게 와닿는다. 다시는 자유를 위협하는 어떤 거짓에도 겁먹지 말고, 특히 공산주의라는 종의 멍에에 속지 말라는 간곡한 요청이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이 스스로 종의 길로 달려갈 듯 위태롭다. 한국 민주화 운동의 일부는 공산주의의 가짜 매력에 현혹되어 거짓말을 전파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의 길로 끌고 가고 있다. 이대로 ‘자유'를 놓치고 말 것인가? 진정한 ‘자유인'으로 거듭날 것인가? 그것은 각성된 국민 한사람 한 사람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에 달려 있다.
영국인들은 국가의 모든 것이 왕의 소유물이고, 개인은 재산을 가질 수 없다는 현실에 자유롭지 못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시대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 1632년~1704년, 잉글랜드 왕국, 철학자, 정치사상가)는 왕만 가지던 재산권에 도전하여 모든 시민은 사유재산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자유로운 인간의 핵심은 ‘재산권’이라는 충격적인 아이디어였다. 마침내 명예혁명을 통해 왕으로부터 개인의 ‘재산권'을 받아냈을 뿐만 아니라 왕만 휘두르던 권력도 제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왕이나 독재자의 뜻이 아닌 법에 의해 국가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법치도 세우게 된다.
개인이 정당하게 취득한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갖는 것은 자유의 가장 근원이 되는 기본 원칙이다. 경제적 자유가 없으면 실존적 자유가 있을 수 없다. 이익을 추구할 자유와 내가 얻은 것은 내 것이라는 기본 명제가 보장될 때 비로소 자유를 논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개방과 자유무역으로 자유로운 통상이 보장될 때 자유는 증진된다.
수백 년의 노예제와 차별을 이겨낸 미국의 건전한 흑인 가정들은 정부 복지를 일상적 삶으로 바꿔 놓은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빠른 속도로 해체되었고, 범죄율 또한 급증하게 되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지나친 복지는 국가에 대한 의존성을 키워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개인의 주체성과 도덕적 책임감과 판단 능력을 뺏어간다. 포퓰리즘을 추종하는 것은 자유를 포기하고 정치적, 경제적 노예의 삶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 또한 포퓰리즘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것을 강제로 빼앗아야 하기 때문에 개인에게 부여된 천부 인권과 재산권이라는 소중한 자유도 침해하게 된다.
경제적 자유가 없이는 정치적 자유가 있을 수 없고, 경제적 자유를 수호할 의지가 없는 자는 자유인이 아니다. 아르헨티나는 1980년대까지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5배였다. 그러나 좌파 정권의 포퓰리즘을 막아내지 못하고 국가로부터 돈을 받기 시작하자 내재된 노예 본성이 영혼을 잠식하여 이제는 전 국민이 영원히 노예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듯하다. 국가의 재정 건정성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국가신용등급이 낮아져 기업들의 자본조달에 어려움이 생기고, 기업이 어려워지면 고용이 이루어지지 않아 일자리가 줄고, 외국 투자가 사라지면서 아르헨티나의 수순을 밟게 된다. 베네수엘라 역시 단기적인 인기몰이 포퓰리즘 정책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당이 집권하면서 이미 좌경화된 국민들은 기꺼이 자유를 헌납했다. 우리나라도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를 쫓아가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국가의 미래나 애국심 따위는 없는 권력자들은 국가 빚이 기하급수로 늘어나도 권력에만 눈이 멀어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한다. 지원받은 국민들은 잠깐은 좋겠지만 결국 우리 아들, 손자들이 갚아야 할 돈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지원받아 써버린 돈은 미래 우리 아이들의 삶을 훔치고 국가를 망치는 행위가 된다. 1인당 25만 원을 주겠다며 국가 세금을 자기 돈인 듯 사용하여 표를 모으는 권력자나 대한민국을 빚의 늪에 빠뜨린 최악의 포퓰리즘 정권을 분별하지 못하고 눈이 가리어진 국민들은 부디 강을 건너기 전에 깨어나길 바란다.
'자유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다. 조금 더 진지하게 질문해 보자.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조금 생각이 복잡해진다. 어쩌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부모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육체가 자라고, 마음이 성장하면서 독립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때가 되면 경제적인 독립과 동시에 정신적인 완전한 독립을 이루게 된다. 이젠 더 이상 부모님께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대한 책임을 지고,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인격의 자유인이 된 것이다.
진정한 자유인은 몸에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매일 콜라 마시고, 피자 먹고, 술 마시고, 마리화나를 피워대지 않는다. 진정한 자유인은 비정상적인 성욕과 성적 방종에 이끌리지 않는다. 건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자유인이고, 식단을 관리하고 삶을 절제하는 사람이 자유인이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행동규범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유한하고 타락한 인간 위에 엄연히 존재하는 초월적 도덕 기준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초월적 도덕법 안에서 자유의지를 발휘하며 개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인권을 극대화한다는 명분으로 평등, 다양성, 포용성, 나다움 등으로 포장되어 있는 문화막시즘적 가짜 자유를 분별해야 한다. 이 '가짜 자유'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생명을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산모에게 있다는 자유이고, 흑인들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인 낙태를 여성 인권으로 둔갑시키는 자유이다. 또한 부부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기업과 근로자의 관계를 파괴하고 해체하는 자유이다. 결혼의 속성을 재정의하고, 남성과 여성만 있는 것이 아닌 수십 가지 제3의 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유이며, 결국 사회적으로 동성애, 포르노, 낙태, 매춘, 마약, 에이즈 등 범죄를 전파하는 자유다. 진짜 자유는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주는 자유이고, 가짜 자유는 나와 이웃을 타락시키고 죽이는 자유다.
문화막시즘적 자유는 역설적이게도 ‘다양성’의 이름으로 ‘획일성’을 추구한다. 개인적 다름을 허용하지 않기에 개인이 가진 소중한 자유를 제한한다. 내 매장에 게이나 트랜스젠더를 채용하지 않을 자유, 동성 커플을 위한 케이크를 제작하지 않을 자유, 동성 간 성행위는 에이즈 발병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가르칠 수 있는 자유를 빼앗는다.
자유에 대한 현실 사회의 적용은 이처럼 매우 구체적인 이슈와 맞물려 있다. 정부는 동성 커플에게도 결혼제도의 특권과 혜택을 똑같이 주어야 하는가? 낙태는 살해 행위인가? 음란물에 대한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가가? 공공도서관에서 어린이가 이용할 수 있는 자료에는 제한이 있어야 하는가? 빈곤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환경보호 규정은 어떠해야 하는가?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을 위한 정책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자유를 지킬 수 있는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좋은 법을 만들고 좋은 정부를 갖는 것만으로는 결코 ‘자유’를 이루어갈 수 없다. 부패한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자유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한, 자유는 그저 공짜로 지켜지지 않는다.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을 떠받치는 도덕적 미덕을 세워나가는 성숙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전통과 권위있는 삶의 제도인 가족의 유대와 국가에 대한 애국심, 종교심, 용기, 질서, 절제와 같은 신중한 태도가 인간을 진정으로 자유롭고 문명적이고 품위 있는 삶을 살게 하는 기초 질서를 이룬다. 미래와 다음 세대의 삶은 생각하지도 않고, 눈먼 돈을 뿌리며 뱃속의 이익만 찾는 부패한 자, 범죄 혐의자, 전과자들이 정치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은 상식이다. 나쁜 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고, 정치 지도자가 되어서도 안된다.
베첼 가족처럼 생명을 걸고 자유를 획득한 수많은 이야기를 가까이에 알고 있다. 바로 자유 대한민국에서 우리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탈북인 이야기이다. 북한 주민은 전지구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 유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서 반드시 북한에 자유를 전해야 한다. 공산주의가 될 운명에 처한 가난한 나라의 자유를 지키고자 이 땅에 생명을 바친 전 세계의 병사와 어머니들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이제는 우리 역시 자유를 전할 수 있는 성숙한 자유인이 되어야 하겠다.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인격과 정신을 세워가는 성화의 길과 같다. 이제 우리의 마지막 사명은 북한 주민에게 자유를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된 자유 대한민국의 자유는 열방을 향해 뻗어 갈 것이다.
충남과 서울의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었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육의 주체를 무너뜨리고 ‘가짜 자유’만 강조하여 일탈, 방종, 무질서를 방관하고 학생들에게 도덕과 책임감에 대한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는 악법이다. 이런 악법을 생산하는 자들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문화막시즘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문화 막시스트들이 그림책의 진리와 자유와 도덕을 훼손하는 것도 지켜볼 수만은 없다.
공무원이 많아지고 정부가 비대해진다는 것은 개인의 자유가 그만큼 축소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부에 의존하는 국민을 양산하는 게 아니라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국민을 양산하고자 한 시대를 이끌었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노예로 만들려는 법안을 경쟁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고, 국민들은 국가가 제공하는 거짓된 복지에 도취되고 있다. 개인의 양심과 도덕이 타락해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진정한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단 하나의 길은 자유의 길 뿐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묻어두었던 선대의 보물, 자유의 푯대,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유산을 이어 받아 진정한 자유와 번영을 이루고, 청년들이 뜨겁게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을 회복하여 자유의 바람을 일으키고, 청년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결국 북한 주민에게 씌운 종의 멍에도 해방하는 진정한 자유통일세대가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임해영 | 그림책박물관 운영
그림책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그림책박물관' (picturebook-museum.com)을 운영하며, 그림책으로 생명을 살리는 매거진 '그림책 BASIC' (picturcebool-basic.com)을 통해 바른 성경적 세계관의 그림책을 연구하고 전하고 있으며, 좋은 그림책을 읽고 살펴볼 수 있는 'Cafe그림책박물관'이라는 북카페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