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도장』 진정한 평화를 꿈꾼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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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기원하는 그림책 『나무 도장』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 『나무 도장』은 2016년 <평화를 품은 책>에서 출판되었다. ‘평화 길 찾기', ‘평화 징검돌', ‘꿈꾸는 그림책' 시리즈가 있는데, 『나무 도장』은 ‘평화 길 찾기'시리즈 중 하나이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며 그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은 다섯 명의 작가가 모여 기획한 그림책 시리즈’라고 설명한다.
지난 <그림책 다시 읽기> 연재글 중에 ‘평화'를 주제로 『애국자가 없는 세상』을 다룬 적이 있다.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애국심도 해체해 버리는 ‘평화주의’의 허구를 다루었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은 ‘평화’에 대해 관념적으로 표현하지만, 『나무 도장』은 실재했던 ‘제주 4.3’의 역사를 다루기에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개인마다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림책의 역사관, 즉 그림책 작가의 역사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어쩌면 그림책 서평을 넘어서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인 엄연한 사실을 왜곡하여 현실 교육과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면 성인 독자로서 무심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화'의 심벌과 같은 권정생 선생님의 그림책을 비평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림책 1세대 작가이자 사랑과 존경을 받는 권윤덕 작가의 그림책을 비평하려니 부담이 앞선다. 하지만 교과서 필수도서로 널리 읽히고 있고, 매스컴에서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현실에서 『나무 도장』이 가진 제주 4.3의 역사왜곡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자 펜을 들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무모하게 희생당한 제주도민을 추모하는 그림책으로 평가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작가님의 진심도 이해하지만, 대한민국 다음 세대가 진짜 ‘평화'를 지키고, 진짜 ‘평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그림책인지 생각해 보자.
작가가 바라보는 제주 4.3
1945년, 해방을 맞아 오지에 나갔던 사람들이
고향, 제주도로 돌아온다.
새로운 꿈도 함께 들어온다.
사람들은 남녀가 평등하게 손잡고 가는 시대,
자유로운 나라, 모두 잘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꿈은 1947년 3월 1일,
관덕정 광장에 모인 사람들 가슴에도 넘쳐났다.
사람들은 파도가 되어 거세게 출렁거렸다.
관덕정 광장에 총소리가 울렸다.
많은 사람들이 탄압에 저항하였다.
미군정 관료들은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몰아 갔다.
프롤로그 형식으로 3장에 걸쳐 그림책 배경의 문을 연다. 전제로 시작하는 서사를 통해 제주 4.3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이 정리된다. 무모한 제주 사람들이 탄압에 맞서 정당한 저항을 하였으나 미 군정 관료들은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몰아갔다는 내러티브다. 제주 4.3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내러티브는 무엇일까? 5.10선거를 방해하기 위한 공산폭동이라는 관점이다.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방해할 목적으로 남로당 중앙당과 제주도 당 공산주의자들이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고 공산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감행한 폭동으로서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이 다수 희생된 사건이라는 설명이다.[1]
분명한 사실은 공산주의자들의 남로당 지령서, 이덕구의 선전포고문 등을 통해 명확히 확인되는 사실이며, 특히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 보고서'와 당시 반란군이 제주도민에게 살포한 삐라는 4.3폭동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을 위한 투쟁이며, 이 반란을 계기로 전 도민이 총궐기해 무장 반격한다’는 반란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2]
제주 남로당의 반란
당시 제주에는 ‘우리 조국의 해방군인 위대한 쏘련군과 그의 천재적 령도자 쓰딸린 대원수 만세',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포스터가 붙었고, 폭도들은 소련 국가와 적기가를 불렀다. 선거사무가 본격화함에 따라 이를 방해하고 파괴하려는 제주 남로당은 일본 군대가 파묻고 간 총칼을 파내 무장하고 소위 ‘인민 해방군’이라는 부대를 조직했다. 초대 사령관에는 김달삼, 2대 사령관에는 이덕구가 임명되었다.[3] 4.3폭동을 주도한 김달삼은 김일성의 북한을 지지하는 지하 선거를 주민들에게 강제했고, 5만여 명의 투표지를 가지고 월북하여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주석단에 선출되었다. 현재 북한 평양 '애국렬사릉'에 그의 묘비가 있다. 김달삼의 뒤를 이은 이덕구는 6.25가 발발하자 ‘인민군 지원 환영회’를 조직하였다.[4]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새벽 2시, 한라산 기슭에 있는 여러 오름에서 봉화가 올랐다. 무장한 남로당 ‘인민 해방군’은 도내 12곳 경찰지서를 습격하여 경찰관을 살해하였고, 선거 관계자들과 우익단체 인사와 그들의 가족을 테러하는 반란을 일으켰다.[5] 지목했던 당사자가 없는 경우에는 그 노모나 부인, 어린아이까지 대신해서 잔인하게 살해했다. 지만원 박사가 쓴 <제주 4.3반란 사건>은 좌익 책이나 보수 책이나 똑같이 들어 있는 이견이 없는 사실들을 파헤치는 책이다. 책의 내용 중 유격대의 만행을 그대로 옮겨본다.
‘4월 18일, 무장 폭도들은 조천면 신촌리에서 60이 넘은 경찰관의 부모를 목 잘라 죽인 후 수족을 절단했고, 애월면 애월읍에서는 임신 중인 반공청년의 형수를 참혹하게 피살했으며, 임신 6개월이 된 경찰관 부인의 배를 갈라 학살했다. 4월 22일, 모슬포에서는 칠순이 넘은 경찰관 부친을 참살한 후 수족을 절단했고, 만삭인 경찰관의 여동생을 생매장했다.’[6]
공산주의자들은 왜 이토록 끔찍하게 학살을 저질렀던 것일까. 그 해답은 공산주의 혁명의 본질에서 찾을 수 있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외쳤다. “지배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전율케 하라!” 테러 전술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학살은 최대한 끔찍하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이어야 했다. 누구도 선거 관리 업무나 우익 단체에서 활동할 엄두를 아예 내지 못하도록 하는 전술이었고, 사상 교육의 결과였다.
국가적 반란이 왜 제주도에서 발생하게 되었을까?
그림책의 첫 장면처럼 해방 후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에 들어왔는데 중국 공산당의 의용군과 팔로군에 있던 사람들도 많았다. 대부분 혈연관계이고, 육지 소식이 늦어 공산 사상에 쉽게 선동되어 큰 영향을 받았고,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공권력이 미치기 힘들다 보니 일제 강점기 때부터 사회주의 비밀조직이 활발히 활동했다. 제주도민 약 6만 내지 7만이 남조선 노동당에 가입했고, 청년들은 남로당 청년 조직격인 민애청에 가입하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못 받을 정도였다.[7]
공산당의 영향력은 군대 내까지 뻗어 있어 4.3반란 이후 빨치산 소탕전이 맹렬히 전개되자 인민유격대 사령관 김달삼은 군대 내 문상길 중위에게 연대장 사살 명령을 내렸다. 문상길은 부대에서 무기와 탄약을 몰래 빼내 남로당원들을 무장 훈련시키며 양성하던 자였다. 6월 18일 새벽 3시 30분 남로당 프락치 손선호 하사는 잠들어 있는 박진경 연대장을 M1 소총으로 사살했다. 손선호 하사는 대구 폭동에 가담했다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국방경비대에 입대한 자였다.[8] 어떻게 이런 자가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버젓이 활동할 수 있었을까? 미 군정은 국방경비대 신병을 모집할 때 미 군정하의 인간은 ‘사상의 자유'를 가진다는 방침에 따라 지원자들에 대한 정치적 신념이나 신상 조사, 사상 검열을 하지 않고 신체검사와 구두시험만으로 모집했다. 덕분에 공산당들은 자기들에게 동조하는 세력들을 국방경비대에 장교, 하사관, 사병으로 침투시키는 입대 공작을 활발히 전개했다. 군에 침투한 남로당의 목표는 결정적 시기가 왔을 때 지하당과 합세하여 무장반란을 유도하는 것이었다.[9]
『나무 도장』 이야기
법치가 미치지 못한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제주 4.3반란을 보며 경악한 군인, 경찰의 다급함과 개인적인 복수심이 이어져 피가 피를 부르는 무차별 살육전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특히 일반 양민에 섞여 들어가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피아식별이 안되는 아비규환 속에 민간인 학살과 무고한 주민들이 억울하게 죽임당하는 아수라가 펼쳐지게 된다. 『나무 도장』의 스토리는 이와 같은 아수라 속에서 발생한 가슴 아픈 사건을 다루고 있다.
4.3반란 이후 진압 과정 속에서 공산주의자였던 주인공 시리의 아버지는 한라산으로 올라가고, 낮에는 경찰들이 산사람과 연락했는지 캐묻고 때리고 고문하고, 밤에는 산사람들이 내려와 먹을 것을 빼앗고 경찰 앞잡이라고 죽창으로 찔러 죽이던 끔찍한 시절이었다. 시리의 외삼촌은 당시 경찰이었는데 어느 날 사람들이 숨어있던 작은 동굴을 찾아냈다. 경찰과 군인들은 동굴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끌고 나와 한 줄로 세워 총으로 쏴 처형했다. 그날 밤 외삼촌과 어머니는 아무도 모르게 현장으로 갔다. 한 아주머니의 품에 매달린 어린아이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어린 시리가 주검 속 치마폭에 쌓여 살아 있었고, 시리의 작은 손에는 나무 도장이 쥐어져 있었다. 성장한 시리를 데리고 처음으로 동굴에 찾아가 그날의 참상을 들려주고 시리 손에 나무 도장을 쥐여 준다. 마지막 장면은 여고생으로 부쩍 자란 시리가 책상 앞에 앉아 나무 도장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난다.
제주 4.3을 진압하지 못했다면?
제주 4.3을 역사적으로 다룰 때 중요한 것은 군경에 의해 학살당한 피해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엄중한 사실이다. 인민유격대가 어떤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는지, 아픔의 책임을 공평하게 다루고 조명하는 것이 희생자에 대한 진정한 추모이다. 진압 과정 중에 군경의 민간인 학살도 있었고, 강경 대응도 부인할 수 없지만 사건의 발단을 명확히 해야 한다. 만약 남로당이 일으킨 제주 4.3을 진압하지 못했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강경 대응을 해서 이런 아픔이 있었다면, 반대로 강경 대응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당시 대한민국은 건국을 앞두고 소련의 지령을 받는 김일성과 남로당의 박헌영이 끊임없이 대한민국 수립을 방해해왔다. 제주 4.3을 강경 대응하지 않았더라도 전국적인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실제로 제주 4.3 이후 1948년 10월 여순 14연대가 수립된 정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여순사건의 발단이 된 군대 내 공산주의자들을 차단하지 않았다면 1950년 6.25가 터졌을 때 어땠을까? 스탈린의 지령을 받고 김일성이 쳐들어 왔을 때 제주도, 여수, 순천, 그리고 전국의 군대에 숨어 있던 남로당들이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강경 대응 중에 일어난 희생자들을 마땅히 추모해야 하지만 정부의 강경 대응 자체를 비난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부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10]
제주 4.3 이야기를 왜 쓰려고 했을까?
작가가 제주 4.3을 그림책으로 다룬 이유와 목적이 있을 것이다. 독자는 여러 가지로 작가의 의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선 그림책의 글과 그림을 촘촘히 읽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직접 언급한 글과 인터뷰, 다양한 매체 활동 자료를 살펴보며 추론해 볼 수 있다. 작가는 ‘사건의 고발에 그치지 않고 이념의 대립을 넘어 4.3의 의미를 새로 찾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나무 도장』은 군인과 경찰을 악마화하고 공산주의자들을 약자로 설정하여 단순화시키고 불행한 하나의 사건에 집중함으로써 또 다른 대립을 만들었다.
진정으로 평화를 향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험한 세월을 견딘 사람들을 공평하게 위로해야 한다. 4.3을 둘러싼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명하고,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돌아보며,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적, 철학적 고찰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4.3을 조명하는 그림책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인간과 역사의 진실이 소중하다'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작가가 정치적 이해와 그 목적을 이루려는 동기에서 출발했기 때문은 아닐까 의심스럽다.
『나무 도장』의 반역사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제주 4.3의 진실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괴로웠다. 무장세력도 너무나 잔인하게 경찰과 우익인사들을 살해했고, 군인과 토벌대의 복수도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아수라도 이와 같은 아수라가 없다. <섬의 반란 1948년 4월 3일>을 쓴 작가 현길연은 어릴 때 겪은 제주 4.3을 평생 기억한다.
막내아들이 섞여 있는 무장대가 할머니를 죽창으로 찔러대고, 이후 토벌대가 그 무장대를 붙잡아 복수심에 불타는 마을 유가족들에게 내놓으니 이미 반죽음이 된 무장대를 향해 증오를 퍼부으며 몽둥이를 내리치고, 할아버지는 막내아들이 섞인 무장대의 처참한 현장을 넋 나간 얼굴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삼촌이 유가족들의 저주에 숨을 거두면서 그 틈에 끼어 허둥대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았을까? 할머니는 당신의 아랫도리를 죽창으로 찔러대는 청년들 중에 혹시 삼촌의 얼굴을 꿈에라도 보지 않았을까? 마지막 남은 공비가 잡히고 마을로 돌아온 사람들은 모여 앉으면 그때 이야기를 했는데 누가 산사람이고, 누가 토벌대 편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살고 죽음이 그 한순간에 달려 있었음을 체험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했고 또 들었다고 한다.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누구의 이야기였든 그것이 내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11]
제주 4.3은 공산당이 일으킨 폭동
사람의 생명이 파리 목숨이 되었던 공포의 세월 동안 당시 제주도 인구의 5%가 희생되었다. 원인 제공은 남로당의 반란이다. 우리 사회에는 해방기에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거나 그 사상을 추종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혁명을 시작할 때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은 광기처럼 발휘된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Pol Pot)는 공산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겠다며 양민 200만 명을 학살했다. 공산주의의 문제는 믿음에서 시작해 결국 광기로 치닫는 좌익적 성향이다.[12] 좌익적 역사관은 증오와 대립의 이념이기에 건전한 역사관을 갖도록 교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유 대한민국은 탄생하자마자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좌익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다. ‘제주 4.3'은 오랜 세월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던 명백한 남로당의 반란이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8년 11월 23일 CNN 과의 인터뷰에서 ‘제주 4.3은 공산당이 일으킨 폭동 사건'이라고 정의했다.[13] 그러나 좌익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전교조를 장악하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반란'이나 ‘폭동'이 아닌 '민중 항쟁'이라 부르며 남로당도, 김일성도 욕하지 않고, 오로지 미 군정을 증오하고, 군과 경찰을 매도한다. 이는 명백한 역사적 왜곡이다.
제주 4.3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다. 제주 남로당이 일으킨 폭동이다. 희생의 아픔과 역사적인 사실은 구분되어야 하는데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는 프레임을 씌워 반공세력만 비난하고, 공산주의 세력은 간과하고 있다. 4.3은 우리 현대사의 한없는 아픔이지만, 4.3을 평정했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4.3 정부 보고서’의 왜곡
『나무 도장』 마지막 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은 글로 정리된다.
제주 4.3사건으로 당시 제주도민 10명에 1명인 25,000~30,000명이 목숨을 잃고 한라산 중산간 마을의 대부분이 불타 없어졌다. 2000년,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공포되었다. 2003년, 국가는 국가권력에 의한 제주도민의 희생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4.3사건의 교훈을 승화시킴으로써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발표하였다.
제주 4.3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선거를 무력으로 방해하고 선거함을 지키던 공무원과 경찰을 무참히 살해한 폭동이다. 이 반란의 소용돌이 속에 무고한 희생자들이 많이 생겼고, 우리는 안타까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보상하고 기려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항적한 사람들을 희생자로 기리고 보상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 제주 4.3 평화공원에는 무수한 폭도들이 희생자로 둔갑해 위패가 모셔져 있다.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까지 죽인 사람도, 수십 명을 죽창으로 찔러 죽인 사람도, 심지어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까지도 희생자로 둔갑해 있다.
모든 출발은 노무현 정부에서 작성한 ‘4.3 정부 보고서’의 왜곡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남로당이 일으킨 ‘반란의 날'을 ‘4.3 희생자 추념일'로 정했다. 11만 평에 이르는 4.3 평화공원의 주요 시설과 전시물은 군경의 학살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조성되었고, 폭도들의 살상을 증언하는 전시물은 단 두어 평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민 해방군의 만행은 의도적으로 축소했다. 600여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보고서에 인민 해방군의 살상행위 기록은 단 4페이지뿐이다.[14]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국가의 명령을 받고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기 위한 선거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들, 내 남편이나 아들이 면장, 이장, 경찰관, 우익 청년 단체라는 이유만으로 유격대원들에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4.3 희생자에서 배제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상생과 화해는 커녕 불신과 대립을 키우고 있다.
4.3의 아픔을 치유하는 대전제
진정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4.3을 이해하는 기본 입장이 다음과 같이 정립되어야 한다. 현길언 작가의 <섬의 반란, 1948년 4월 3일>의 일부이다.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반 인권적 사례 때문에 자유민주주의국가 건설을 거부하려는 그 반란의 목적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 사건이 반국가적 반란이라 하더라도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반인권적 사실 또한 정당화할 수는 없다.’ [15]
이것이 4.3의 아픔을 치유하는 대전제가 되어야 하겠다. 『나무 도장』이 진정한 평화를 꿈꾸며 만든 그림책이라면, 제주 4.3의 발단을 명확히 하고, 다시는 대한민국에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격려해야 한다.
정부 보고서는 4.3에서 이데올로기 측면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미.소 외세 간의 대립과 피해 측면에서만 사건을 살폈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4.3사건의 핵심과 본질은 좌.우 사이에 발생한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 사건에서 이데올로기를 빼 버리면 그 보고서는 아무런 진실을 전달하지 못한다. 왜 4.3 보고서에서 이데올로기를 배제했을까? 4.3을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다루면 좌익들의 폭력적 생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16] 무장대들은 인공기를 게양하고 이데올로기가 다르다는 이유로 가까운 친척들을 살해했다.
900여억 원을 들여 4.3 평화공원을 세워 지금도 방문자들을 상대로 이데올로기 교육을 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부 보고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모욕으로 규정하고 처벌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어떤 역사도 성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 해석이 아무리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객관적인 사실(fact)에 기초해야 한다. 실재에 대한 치열한 역사적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림책을 통한 올바른 역사교육
역사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나무 도장』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미 군정과 대한민국의 군경을 부정하고 매도하는 것이 정당하게 여겨진다. 『나무 도장』을 읽은 학생들은 ‘어떻게 빨갱이라고 죽일 수가 있어요?’라는 순진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TBS 시민의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학생들과 함께 독후 활동을 하는 가운데 작가가 “네가 만약 군인이나 경찰인데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 줄로 세워 사람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니?”라는 매우 이해하기 힘든 질문을 한다. “모두 들고일어나면 돼요"라는 학생들의 대답에 흡족해하며 답한다. “그 당시에도 그렇게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어. 그것이 여순사건이란다. 자기 위치에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지.”라고 가르친다.[17] 군대내 공산주의자들이 끔찍한 살육을 일으켰던 여순반란사건을 미화시킨다. 국가를 전복하는 세력에 대해 군인으로서, 경찰로서의 임무를 거부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림책을 통한 올바른 역사관과 인간관 교육일까. 평화라는 명분 뒤에 자유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전복의 이데올로기를 가르치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나무 도장』의 역사적 왜곡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제점은 어린이가 읽기에 너무도 잔인한 그림책이라는 점이다. 이미지의 힘이 얼마나 큰지, 더욱이 어릴 때 본 이미지는 성장해서도 내면에 남을 수밖에 없는 강렬한 것임에도 잔인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까? 작가도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권하지 않는다는 멘트를 남기기도 했지만, 책 표지에 더 정확하게 권장 연령을 표시하여 적어도 초등 5.6 학년 이상 또는 중학교 이상에서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무리
제주 4.3을 종합적으로 통찰해 보고 왜 이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어떤 희생을 통해 제주도민과 대한민국 국민이 자유, 평등, 인권, 생명,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는지 올바르게 조명하는 것이 험난한 세월을 온몸으로 겪으며 희생당한 제주도민에 대한 진정한 추도이다. 『나무 도장』이 제주 4.3의 진실을 조명하는 그림책으로, 생지옥과 같은 아픔을 견딘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추도의 그림책으로 재정립되고 사용되길 바란다.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공산주의라는 거짓된 이념과 싸워 이겨 생존했다. 이 진실과 거짓의 역사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대한민국 미래의 운명이 정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건국 전쟁'이 개봉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왜 이승만을 지우려 했는지, 왜 북한은 아직도 이승만을 그토록 저주하는지, 누가 자유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했고, 자유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한줄기 빛이 비치면 어둠은 물러갈 수밖에 없다. 진실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을 가리던 거짓이 벗겨지고 진실이 밝히 보인다. 헌법에서 ‘자유'를 지우려 한 세력, 자유 대한민국의 역사를 지우려 한 세력이 지금도 교육과 문화를 장악하고 있지만 진실은 힘이 세다. 사실(fact)의 힘, 진실의 힘을 믿는다.
대한민국 역사의 첫 번째 단추부터 제대로 다시 끼워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킬 수 있고, 자유 대한민국의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길 위에 드러누워 시위를 일삼으며 후진국으로 기울어 갈 것인가? 미래의 길을 만들며 70 여 년의 눈부신 역사를 이어가는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인가? 그것은 올바른 역사교육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1] 월드뷰 2024년 2월호 김은구 글
[2] 현길연. <섬의 반란 1948년4월3일> 38
[3] 지만원 <제주 4.3반란 사건> 171
[4] 월드뷰 2024년 2월호 김은구 글
[5] 현길연. <섬의 반란 1948년4월3일> 36
[6] 지만원 <제주 4.3반란 사건>145
[7] 현길연. <섬의 반란 1948년4월3일> 26-29
[8] 김용삼 <대구10월폭동 제주4.3사건 여순반란사건> 136
[9] 김용삼 <대구10월폭동 제주4.3사건 여순반란사건> 105-110
[10] 그라운드C 유투브 https://youtu.be/vYQV8sfOsuU?si=XI84cF3b8XuY3MUA
[11] 현길연. <섬의 반란 1948년4월3일> 93-143
[12] 월드뷰 2024년 2월호 이강호 인터뷰
[13] 지만원 <제주 4.3반란 사건>151
[14] 월드뷰 2024년 2월호 김은구 글
[15] 현길연. <섬의 반란 1948년4월3일> 81
[16] 지만원 <제주 4.3반란 사건>290-291
[17] TBS 시민의방송 그림책으로 만나는 제주 4·3 '권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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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해영 | 그림책박물관 운영 그림책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그림책박물관' (picturebook-museum.com)을 운영하며, 그림책으로 생명을 살리는 매거진 '그림책 BASIC' (picturcebool-basic.com)을 통해 바른 성경적 세계관의 그림책을 연구하고 전하고 있으며, 좋은 그림책을 읽고 살펴볼 수 있는 'Cafe그림책박물관'이라는 북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
『나무 도장』 진정한 평화를 꿈꾼다면….
『나무 도장』 자세히보기
평화를 기원하는 그림책 『나무 도장』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 『나무 도장』은 2016년 <평화를 품은 책>에서 출판되었다. ‘평화 길 찾기', ‘평화 징검돌', ‘꿈꾸는 그림책' 시리즈가 있는데, 『나무 도장』은 ‘평화 길 찾기'시리즈 중 하나이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며 그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은 다섯 명의 작가가 모여 기획한 그림책 시리즈’라고 설명한다.
지난 <그림책 다시 읽기> 연재글 중에 ‘평화'를 주제로 『애국자가 없는 세상』을 다룬 적이 있다.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애국심도 해체해 버리는 ‘평화주의’의 허구를 다루었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은 ‘평화’에 대해 관념적으로 표현하지만, 『나무 도장』은 실재했던 ‘제주 4.3’의 역사를 다루기에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개인마다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림책의 역사관, 즉 그림책 작가의 역사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어쩌면 그림책 서평을 넘어서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인 엄연한 사실을 왜곡하여 현실 교육과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면 성인 독자로서 무심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화'의 심벌과 같은 권정생 선생님의 그림책을 비평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림책 1세대 작가이자 사랑과 존경을 받는 권윤덕 작가의 그림책을 비평하려니 부담이 앞선다. 하지만 교과서 필수도서로 널리 읽히고 있고, 매스컴에서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현실에서 『나무 도장』이 가진 제주 4.3의 역사왜곡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자 펜을 들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무모하게 희생당한 제주도민을 추모하는 그림책으로 평가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작가님의 진심도 이해하지만, 대한민국 다음 세대가 진짜 ‘평화'를 지키고, 진짜 ‘평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그림책인지 생각해 보자.
작가가 바라보는 제주 4.3
프롤로그 형식으로 3장에 걸쳐 그림책 배경의 문을 연다. 전제로 시작하는 서사를 통해 제주 4.3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이 정리된다. 무모한 제주 사람들이 탄압에 맞서 정당한 저항을 하였으나 미 군정 관료들은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몰아갔다는 내러티브다. 제주 4.3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내러티브는 무엇일까? 5.10선거를 방해하기 위한 공산폭동이라는 관점이다.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방해할 목적으로 남로당 중앙당과 제주도 당 공산주의자들이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고 공산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감행한 폭동으로서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이 다수 희생된 사건이라는 설명이다.[1]
분명한 사실은 공산주의자들의 남로당 지령서, 이덕구의 선전포고문 등을 통해 명확히 확인되는 사실이며, 특히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 보고서'와 당시 반란군이 제주도민에게 살포한 삐라는 4.3폭동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을 위한 투쟁이며, 이 반란을 계기로 전 도민이 총궐기해 무장 반격한다’는 반란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2]
제주 남로당의 반란
당시 제주에는 ‘우리 조국의 해방군인 위대한 쏘련군과 그의 천재적 령도자 쓰딸린 대원수 만세',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포스터가 붙었고, 폭도들은 소련 국가와 적기가를 불렀다. 선거사무가 본격화함에 따라 이를 방해하고 파괴하려는 제주 남로당은 일본 군대가 파묻고 간 총칼을 파내 무장하고 소위 ‘인민 해방군’이라는 부대를 조직했다. 초대 사령관에는 김달삼, 2대 사령관에는 이덕구가 임명되었다.[3] 4.3폭동을 주도한 김달삼은 김일성의 북한을 지지하는 지하 선거를 주민들에게 강제했고, 5만여 명의 투표지를 가지고 월북하여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주석단에 선출되었다. 현재 북한 평양 '애국렬사릉'에 그의 묘비가 있다. 김달삼의 뒤를 이은 이덕구는 6.25가 발발하자 ‘인민군 지원 환영회’를 조직하였다.[4]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새벽 2시, 한라산 기슭에 있는 여러 오름에서 봉화가 올랐다. 무장한 남로당 ‘인민 해방군’은 도내 12곳 경찰지서를 습격하여 경찰관을 살해하였고, 선거 관계자들과 우익단체 인사와 그들의 가족을 테러하는 반란을 일으켰다.[5] 지목했던 당사자가 없는 경우에는 그 노모나 부인, 어린아이까지 대신해서 잔인하게 살해했다. 지만원 박사가 쓴 <제주 4.3반란 사건>은 좌익 책이나 보수 책이나 똑같이 들어 있는 이견이 없는 사실들을 파헤치는 책이다. 책의 내용 중 유격대의 만행을 그대로 옮겨본다.
공산주의자들은 왜 이토록 끔찍하게 학살을 저질렀던 것일까. 그 해답은 공산주의 혁명의 본질에서 찾을 수 있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외쳤다. “지배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전율케 하라!” 테러 전술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학살은 최대한 끔찍하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이어야 했다. 누구도 선거 관리 업무나 우익 단체에서 활동할 엄두를 아예 내지 못하도록 하는 전술이었고, 사상 교육의 결과였다.
국가적 반란이 왜 제주도에서 발생하게 되었을까?
그림책의 첫 장면처럼 해방 후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에 들어왔는데 중국 공산당의 의용군과 팔로군에 있던 사람들도 많았다. 대부분 혈연관계이고, 육지 소식이 늦어 공산 사상에 쉽게 선동되어 큰 영향을 받았고,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공권력이 미치기 힘들다 보니 일제 강점기 때부터 사회주의 비밀조직이 활발히 활동했다. 제주도민 약 6만 내지 7만이 남조선 노동당에 가입했고, 청년들은 남로당 청년 조직격인 민애청에 가입하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못 받을 정도였다.[7]
공산당의 영향력은 군대 내까지 뻗어 있어 4.3반란 이후 빨치산 소탕전이 맹렬히 전개되자 인민유격대 사령관 김달삼은 군대 내 문상길 중위에게 연대장 사살 명령을 내렸다. 문상길은 부대에서 무기와 탄약을 몰래 빼내 남로당원들을 무장 훈련시키며 양성하던 자였다. 6월 18일 새벽 3시 30분 남로당 프락치 손선호 하사는 잠들어 있는 박진경 연대장을 M1 소총으로 사살했다. 손선호 하사는 대구 폭동에 가담했다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국방경비대에 입대한 자였다.[8] 어떻게 이런 자가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버젓이 활동할 수 있었을까? 미 군정은 국방경비대 신병을 모집할 때 미 군정하의 인간은 ‘사상의 자유'를 가진다는 방침에 따라 지원자들에 대한 정치적 신념이나 신상 조사, 사상 검열을 하지 않고 신체검사와 구두시험만으로 모집했다. 덕분에 공산당들은 자기들에게 동조하는 세력들을 국방경비대에 장교, 하사관, 사병으로 침투시키는 입대 공작을 활발히 전개했다. 군에 침투한 남로당의 목표는 결정적 시기가 왔을 때 지하당과 합세하여 무장반란을 유도하는 것이었다.[9]
『나무 도장』 이야기
법치가 미치지 못한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제주 4.3반란을 보며 경악한 군인, 경찰의 다급함과 개인적인 복수심이 이어져 피가 피를 부르는 무차별 살육전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특히 일반 양민에 섞여 들어가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피아식별이 안되는 아비규환 속에 민간인 학살과 무고한 주민들이 억울하게 죽임당하는 아수라가 펼쳐지게 된다. 『나무 도장』의 스토리는 이와 같은 아수라 속에서 발생한 가슴 아픈 사건을 다루고 있다.
4.3반란 이후 진압 과정 속에서 공산주의자였던 주인공 시리의 아버지는 한라산으로 올라가고, 낮에는 경찰들이 산사람과 연락했는지 캐묻고 때리고 고문하고, 밤에는 산사람들이 내려와 먹을 것을 빼앗고 경찰 앞잡이라고 죽창으로 찔러 죽이던 끔찍한 시절이었다. 시리의 외삼촌은 당시 경찰이었는데 어느 날 사람들이 숨어있던 작은 동굴을 찾아냈다. 경찰과 군인들은 동굴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끌고 나와 한 줄로 세워 총으로 쏴 처형했다. 그날 밤 외삼촌과 어머니는 아무도 모르게 현장으로 갔다. 한 아주머니의 품에 매달린 어린아이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어린 시리가 주검 속 치마폭에 쌓여 살아 있었고, 시리의 작은 손에는 나무 도장이 쥐어져 있었다. 성장한 시리를 데리고 처음으로 동굴에 찾아가 그날의 참상을 들려주고 시리 손에 나무 도장을 쥐여 준다. 마지막 장면은 여고생으로 부쩍 자란 시리가 책상 앞에 앉아 나무 도장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난다.
제주 4.3을 진압하지 못했다면?
제주 4.3을 역사적으로 다룰 때 중요한 것은 군경에 의해 학살당한 피해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엄중한 사실이다. 인민유격대가 어떤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는지, 아픔의 책임을 공평하게 다루고 조명하는 것이 희생자에 대한 진정한 추모이다. 진압 과정 중에 군경의 민간인 학살도 있었고, 강경 대응도 부인할 수 없지만 사건의 발단을 명확히 해야 한다. 만약 남로당이 일으킨 제주 4.3을 진압하지 못했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강경 대응을 해서 이런 아픔이 있었다면, 반대로 강경 대응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당시 대한민국은 건국을 앞두고 소련의 지령을 받는 김일성과 남로당의 박헌영이 끊임없이 대한민국 수립을 방해해왔다. 제주 4.3을 강경 대응하지 않았더라도 전국적인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실제로 제주 4.3 이후 1948년 10월 여순 14연대가 수립된 정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여순사건의 발단이 된 군대 내 공산주의자들을 차단하지 않았다면 1950년 6.25가 터졌을 때 어땠을까? 스탈린의 지령을 받고 김일성이 쳐들어 왔을 때 제주도, 여수, 순천, 그리고 전국의 군대에 숨어 있던 남로당들이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강경 대응 중에 일어난 희생자들을 마땅히 추모해야 하지만 정부의 강경 대응 자체를 비난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부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10]
제주 4.3 이야기를 왜 쓰려고 했을까?
작가가 제주 4.3을 그림책으로 다룬 이유와 목적이 있을 것이다. 독자는 여러 가지로 작가의 의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선 그림책의 글과 그림을 촘촘히 읽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직접 언급한 글과 인터뷰, 다양한 매체 활동 자료를 살펴보며 추론해 볼 수 있다. 작가는 ‘사건의 고발에 그치지 않고 이념의 대립을 넘어 4.3의 의미를 새로 찾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나무 도장』은 군인과 경찰을 악마화하고 공산주의자들을 약자로 설정하여 단순화시키고 불행한 하나의 사건에 집중함으로써 또 다른 대립을 만들었다.
진정으로 평화를 향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험한 세월을 견딘 사람들을 공평하게 위로해야 한다. 4.3을 둘러싼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명하고,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돌아보며,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적, 철학적 고찰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4.3을 조명하는 그림책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인간과 역사의 진실이 소중하다'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작가가 정치적 이해와 그 목적을 이루려는 동기에서 출발했기 때문은 아닐까 의심스럽다.
『나무 도장』의 반역사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제주 4.3의 진실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괴로웠다. 무장세력도 너무나 잔인하게 경찰과 우익인사들을 살해했고, 군인과 토벌대의 복수도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아수라도 이와 같은 아수라가 없다. <섬의 반란 1948년 4월 3일>을 쓴 작가 현길연은 어릴 때 겪은 제주 4.3을 평생 기억한다.
막내아들이 섞여 있는 무장대가 할머니를 죽창으로 찔러대고, 이후 토벌대가 그 무장대를 붙잡아 복수심에 불타는 마을 유가족들에게 내놓으니 이미 반죽음이 된 무장대를 향해 증오를 퍼부으며 몽둥이를 내리치고, 할아버지는 막내아들이 섞인 무장대의 처참한 현장을 넋 나간 얼굴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삼촌이 유가족들의 저주에 숨을 거두면서 그 틈에 끼어 허둥대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았을까? 할머니는 당신의 아랫도리를 죽창으로 찔러대는 청년들 중에 혹시 삼촌의 얼굴을 꿈에라도 보지 않았을까? 마지막 남은 공비가 잡히고 마을로 돌아온 사람들은 모여 앉으면 그때 이야기를 했는데 누가 산사람이고, 누가 토벌대 편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살고 죽음이 그 한순간에 달려 있었음을 체험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했고 또 들었다고 한다.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누구의 이야기였든 그것이 내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11]
제주 4.3은 공산당이 일으킨 폭동
사람의 생명이 파리 목숨이 되었던 공포의 세월 동안 당시 제주도 인구의 5%가 희생되었다. 원인 제공은 남로당의 반란이다. 우리 사회에는 해방기에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거나 그 사상을 추종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혁명을 시작할 때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은 광기처럼 발휘된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Pol Pot)는 공산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겠다며 양민 200만 명을 학살했다. 공산주의의 문제는 믿음에서 시작해 결국 광기로 치닫는 좌익적 성향이다.[12] 좌익적 역사관은 증오와 대립의 이념이기에 건전한 역사관을 갖도록 교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유 대한민국은 탄생하자마자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좌익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다. ‘제주 4.3'은 오랜 세월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던 명백한 남로당의 반란이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8년 11월 23일 CNN 과의 인터뷰에서 ‘제주 4.3은 공산당이 일으킨 폭동 사건'이라고 정의했다.[13] 그러나 좌익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전교조를 장악하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반란'이나 ‘폭동'이 아닌 '민중 항쟁'이라 부르며 남로당도, 김일성도 욕하지 않고, 오로지 미 군정을 증오하고, 군과 경찰을 매도한다. 이는 명백한 역사적 왜곡이다.
제주 4.3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다. 제주 남로당이 일으킨 폭동이다. 희생의 아픔과 역사적인 사실은 구분되어야 하는데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는 프레임을 씌워 반공세력만 비난하고, 공산주의 세력은 간과하고 있다. 4.3은 우리 현대사의 한없는 아픔이지만, 4.3을 평정했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4.3 정부 보고서’의 왜곡
『나무 도장』 마지막 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은 글로 정리된다.
제주 4.3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선거를 무력으로 방해하고 선거함을 지키던 공무원과 경찰을 무참히 살해한 폭동이다. 이 반란의 소용돌이 속에 무고한 희생자들이 많이 생겼고, 우리는 안타까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보상하고 기려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항적한 사람들을 희생자로 기리고 보상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 제주 4.3 평화공원에는 무수한 폭도들이 희생자로 둔갑해 위패가 모셔져 있다.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까지 죽인 사람도, 수십 명을 죽창으로 찔러 죽인 사람도, 심지어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까지도 희생자로 둔갑해 있다.
모든 출발은 노무현 정부에서 작성한 ‘4.3 정부 보고서’의 왜곡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남로당이 일으킨 ‘반란의 날'을 ‘4.3 희생자 추념일'로 정했다. 11만 평에 이르는 4.3 평화공원의 주요 시설과 전시물은 군경의 학살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조성되었고, 폭도들의 살상을 증언하는 전시물은 단 두어 평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민 해방군의 만행은 의도적으로 축소했다. 600여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보고서에 인민 해방군의 살상행위 기록은 단 4페이지뿐이다.[14]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국가의 명령을 받고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기 위한 선거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들, 내 남편이나 아들이 면장, 이장, 경찰관, 우익 청년 단체라는 이유만으로 유격대원들에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4.3 희생자에서 배제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상생과 화해는 커녕 불신과 대립을 키우고 있다.
4.3의 아픔을 치유하는 대전제
진정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4.3을 이해하는 기본 입장이 다음과 같이 정립되어야 한다. 현길언 작가의 <섬의 반란, 1948년 4월 3일>의 일부이다.
이것이 4.3의 아픔을 치유하는 대전제가 되어야 하겠다. 『나무 도장』이 진정한 평화를 꿈꾸며 만든 그림책이라면, 제주 4.3의 발단을 명확히 하고, 다시는 대한민국에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격려해야 한다.
정부 보고서는 4.3에서 이데올로기 측면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미.소 외세 간의 대립과 피해 측면에서만 사건을 살폈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4.3사건의 핵심과 본질은 좌.우 사이에 발생한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 사건에서 이데올로기를 빼 버리면 그 보고서는 아무런 진실을 전달하지 못한다. 왜 4.3 보고서에서 이데올로기를 배제했을까? 4.3을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다루면 좌익들의 폭력적 생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16] 무장대들은 인공기를 게양하고 이데올로기가 다르다는 이유로 가까운 친척들을 살해했다.
900여억 원을 들여 4.3 평화공원을 세워 지금도 방문자들을 상대로 이데올로기 교육을 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부 보고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모욕으로 규정하고 처벌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어떤 역사도 성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 해석이 아무리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객관적인 사실(fact)에 기초해야 한다. 실재에 대한 치열한 역사적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림책을 통한 올바른 역사교육
역사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나무 도장』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미 군정과 대한민국의 군경을 부정하고 매도하는 것이 정당하게 여겨진다. 『나무 도장』을 읽은 학생들은 ‘어떻게 빨갱이라고 죽일 수가 있어요?’라는 순진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TBS 시민의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학생들과 함께 독후 활동을 하는 가운데 작가가 “네가 만약 군인이나 경찰인데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 줄로 세워 사람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니?”라는 매우 이해하기 힘든 질문을 한다. “모두 들고일어나면 돼요"라는 학생들의 대답에 흡족해하며 답한다. “그 당시에도 그렇게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어. 그것이 여순사건이란다. 자기 위치에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지.”라고 가르친다.[17] 군대내 공산주의자들이 끔찍한 살육을 일으켰던 여순반란사건을 미화시킨다. 국가를 전복하는 세력에 대해 군인으로서, 경찰로서의 임무를 거부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림책을 통한 올바른 역사관과 인간관 교육일까. 평화라는 명분 뒤에 자유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전복의 이데올로기를 가르치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나무 도장』의 역사적 왜곡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제점은 어린이가 읽기에 너무도 잔인한 그림책이라는 점이다. 이미지의 힘이 얼마나 큰지, 더욱이 어릴 때 본 이미지는 성장해서도 내면에 남을 수밖에 없는 강렬한 것임에도 잔인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까? 작가도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권하지 않는다는 멘트를 남기기도 했지만, 책 표지에 더 정확하게 권장 연령을 표시하여 적어도 초등 5.6 학년 이상 또는 중학교 이상에서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무리
제주 4.3을 종합적으로 통찰해 보고 왜 이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어떤 희생을 통해 제주도민과 대한민국 국민이 자유, 평등, 인권, 생명,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는지 올바르게 조명하는 것이 험난한 세월을 온몸으로 겪으며 희생당한 제주도민에 대한 진정한 추도이다. 『나무 도장』이 제주 4.3의 진실을 조명하는 그림책으로, 생지옥과 같은 아픔을 견딘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추도의 그림책으로 재정립되고 사용되길 바란다.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공산주의라는 거짓된 이념과 싸워 이겨 생존했다. 이 진실과 거짓의 역사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대한민국 미래의 운명이 정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건국 전쟁'이 개봉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왜 이승만을 지우려 했는지, 왜 북한은 아직도 이승만을 그토록 저주하는지, 누가 자유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했고, 자유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한줄기 빛이 비치면 어둠은 물러갈 수밖에 없다. 진실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을 가리던 거짓이 벗겨지고 진실이 밝히 보인다. 헌법에서 ‘자유'를 지우려 한 세력, 자유 대한민국의 역사를 지우려 한 세력이 지금도 교육과 문화를 장악하고 있지만 진실은 힘이 세다. 사실(fact)의 힘, 진실의 힘을 믿는다.
대한민국 역사의 첫 번째 단추부터 제대로 다시 끼워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킬 수 있고, 자유 대한민국의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길 위에 드러누워 시위를 일삼으며 후진국으로 기울어 갈 것인가? 미래의 길을 만들며 70 여 년의 눈부신 역사를 이어가는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인가? 그것은 올바른 역사교육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1] 월드뷰 2024년 2월호 김은구 글
[2] 현길연. <섬의 반란 1948년4월3일> 38
[3] 지만원 <제주 4.3반란 사건> 171
[4] 월드뷰 2024년 2월호 김은구 글
[5] 현길연. <섬의 반란 1948년4월3일> 36
[6] 지만원 <제주 4.3반란 사건>145
[7] 현길연. <섬의 반란 1948년4월3일> 26-29
[8] 김용삼 <대구10월폭동 제주4.3사건 여순반란사건> 136
[9] 김용삼 <대구10월폭동 제주4.3사건 여순반란사건> 105-110
[10] 그라운드C 유투브 https://youtu.be/vYQV8sfOsuU?si=XI84cF3b8XuY3MUA
[11] 현길연. <섬의 반란 1948년4월3일> 93-143
[12] 월드뷰 2024년 2월호 이강호 인터뷰
[13] 지만원 <제주 4.3반란 사건>151
[14] 월드뷰 2024년 2월호 김은구 글
[15] 현길연. <섬의 반란 1948년4월3일> 81
[16] 지만원 <제주 4.3반란 사건>290-291
[17] TBS 시민의방송 그림책으로 만나는 제주 4·3 '권윤덕'
임해영 | 그림책박물관 운영
그림책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그림책박물관' (picturebook-museum.com)을 운영하며, 그림책으로 생명을 살리는 매거진 '그림책 BASIC' (picturcebool-basic.com)을 통해 바른 성경적 세계관의 그림책을 연구하고 전하고 있으며, 좋은 그림책을 읽고 살펴볼 수 있는 'Cafe그림책박물관'이라는 북카페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