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의 허구와 '기후위기'

20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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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의 허구와 '기후위기'



『얘들아, 기후가 위험해!』 그림책 내용

책 표지에 네 명의 어린이와 한 명의 어른이 기후가 위험하니 “자, 우리가 지구를 구하러 가자!”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그림책 제목 위에 ‘A Climate in Chaos(혼돈의 기후)’라는 영문도 눈에 뜨인다.

 
현재 전 세계 매체에서 이와 같은 주장이 다뤄지고 있으며, 국가 정책이 바뀌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그림책 분야도 2015년도부터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는 그림책들이 다수 출간되고 있다. 그중 하나인 <얘들아, 기후가 위험해!>의 중심 내용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지구의 온도가 높아져 기후 재앙이 발생하고 있으므로,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가치관과 생활 태도를 가져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지 가운데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어린이가 바로 기후가 왜 위험한지, 기후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는 주인공이다.


이 그림책은 기후가 위험해진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동물은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고,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산소를 내뱉는데, 식물이 마시지 못하고 남은 이산화탄소는 하늘로 올라가 온실가스와 만나 지구를 덮어 따뜻하게 만든다. 200여 년 전부터 사람들이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태워 기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소나 쓰레기에서 나오는 메탄가스처럼 인류가 발생시키는 막대한 온실가스로 인해 어마어마한 숲이 줄어들고 있으며, 동물들이 사는 서식지와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서 온실가스를 만들지 않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설명해 주고, 더욱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 태양열과 같은 재생에너지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어린이 그림책이 잘못된 사실을 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와 같은 그림책의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이산화 탄소를 줄여야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환경 교육인지 알아보자.



기후변화에 이산화탄소의 영향은 과연 어느 정도?

먼저 과학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이 과학적인 해결 방법일까? 이산화탄소를 줄이면 지구가 푸르러지는 것일까? 온실가스를 줄이고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를 이용하면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는 것일까?

 
미국 과학자 31.000명이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를 부정하면서 정부가 기후협약에 비준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오리건 청원(1)'을 올렸다(2). 과학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과학자들 가운데 0.3%만이 지구 온난화가 인간에 의한 것이라고 명시했으며, 그 외의 많은 과학자가 ‘탄소중립'은 하나의 ‘종교적 미신’이라고 말한다. 그레고리 라이트스톤(Gregory Wrightstone)(3)은 그의 저서 『불편한 사실, 앨 고어가 몰랐던 지구의 기후과학(어문학사, 2021)』에서, 모든 생명의 기본이 되는 이산화탄소를 지구 종말을 부르는 기후 재앙의 원인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과학적 잘못을 범했는지 통계와 데이터로 설명한다. 이를 대략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구의 온도는 태양의 활동, 해류와 구름의 강력한 영향, 눈으로 인한 지면의 햇빛 반사율, 화산과 지진 같은 지구 방출열, 물이 증발하는 것과 같은 물 순환 등 수많은 복잡한 요인과 얽혀있다. 또한 온실효과로 인한 지구 온도의 변화는 매우 미미하며, 이렇게 미미한 온실효과 중 60~95%의 요인도 이산화탄소가 아닌 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산화탄소의 영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대기 성분의 99%는 질소와 산소로 이루어져 있고, 그 나머지 1%는 여러 종류의 미량 기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미량 기체 중에 0.04%가 이산화탄소이다.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데 온실효과 자체도 너무나 미미한 요인인데, 그중 인간이 발행시키는 이산화탄소의 영향이라는 것은 숫자상으로는 무의미하다고 밝힌다. 


이산화탄소 증가는 더 많은 식량을 제공한다

MIT 대기과학자 리차드 린즌(Richard Lindzen)(4)은  “이산화탄소는 저탄소 시대에 주어진 지구 생태계를 위한 보약”이라고 주장한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300ppm 더 증가했을 때의 수확량 증가와 경제적 혜택을 549종을 대상으로 한 3,586회의 실험에 근거한 데이터 자료가 『불편한 사실』 48페이지에 자세히 나와 있다. 즉 '이산화탄소 증가는 식물이 더 잘 성장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전 세계 더 많은 사람에게 식량을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추려는 노력은 식물에게도 나쁘고 동물에게도 나쁘고 인간에게도 당연히 나쁘다. 그레고리 라이트스톤은 “다음 세기에 역사학자들이 분명 의문을 품게 될 것은 ‘어떻게 아주 결함투성이의 논리가 약삭빠르고 계속되는 선전으로 가려져 실제로 강력한 이익집단의 연합을 만들어 이들이 인간의 산업 활동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지구를 파괴하는 독성물질이라는 것을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확산시킬 수 있었는가’라는 사실이다. 식물의 생명줄인 이산화탄소가 한때 독극물로 여겨졌다는 것은 세계사에서 최대 집단 최면으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5)



이산화탄소는 어떻게 악마화 되었을까?

기후과학이 정치화되기 전에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지구의 자연 현상으로 빙하기와 온난기가 반복되었다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마이클 만(Michael Mann)이라는 무명 과학자가 1998년과 1999년에 각각 논문 두 편을 발표하면서 기후 논쟁이 시작됐다. 지금보다 더 따뜻했던 중세 온난기와 이후 찾아온 소빙하기를 삭제한 하키 스틱 그래프(6)가 만들어졌고, 이것이 2001년 IPCC의 제3차 보고서와 미국 정치인 앨 고어의 영화와 저서 『불편한 진실, An Inconvenient Truth』에 인용되면서 지구 종말 증후군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후 대재앙의 원인으로 이산화탄소가 악마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사실은 지금의 온난화 추세는 이산화탄소가 지구 대기에 증가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또 이산화탄소가 급증하고 있었던 1944년부터 1976년까지 33년 동안 뚜렷한 냉각기가 있었고, 1998년부터 거의 18년 동안 온난화가 멈췄다. 그러자 2005년경에 ‘지구온난화’라는 용어는 포괄적인 의미의 ‘기후변화’로 바뀌었다.


현재 환경 그림책은 가장 높은 출간율을 보인다. 그림책박물관의 주제별 코너에서 ‘환경 그림책'으로 검색해 보면 총 657권의 그림책이 검색된다.(7) 이 그림책들은 모두 ‘2016년 이후’에 발행되었다. 불과 8년 만에 657권이 발행될 정도로 환경을 다루는 그림책이 넘쳐난다.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가치관 교육은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삶의 태도를 가르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환경 그림책에는 ‘진짜 환경 이야기’를 전하는 내용이 아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감정에 호소하는 과장된 내용과 어린이들을 추동하는 모종의 목소리가 섞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은 현상은 그 사상적 배경에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생태주의(ecologism)’가 있기 때문이다. 환경주의자들의 배경이 되는 ‘생태주의’를 살펴봄으로 무수히 출간되고 있는 환경 그림책의 흐름과 방향성을 좀 더 파헤쳐보자.



'생태주의'에 대하여

영국의 정치학자 앤드루 돕슨(Andrew Dobson)은 ‘생태주의’를 인간 사회와 자연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답변하는 다양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라고 표현한다. 돕슨에 따르면 ‘생태주의’는 산업화 이후 등장하게 된 전 지구적인 환경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정치적 입장과 이념을 의미한다.(8) ‘생태주의’는 전통적인 ‘환경주의’보다 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방법으로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사상이다. 즉 ‘환경주의’는 현재의 환경 문제를 전문적인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생태주의’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보다 심층적인 사회 문제에 원인이 있으므로 사회의 근본적인 전환으로만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간 중심적 세계관으로는 더 이상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미래를 위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연 생태를 중심에 놓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생태주의’는 ‘경제성장이 과연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이러한 물음 위에서 반성장주의 모델을 채택한다.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환경파괴를 낳을 수밖에 없으므로 성장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성장주의를 위해서 전 세계 사람들이 새로운 금욕주의와 같은 가치관 변화 운동, 문화 운동을 전개해야 하며 큰 규모의 경제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지방주의, 공동체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소비 욕구를 생산하는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생활양식의 총체적 변형이 필요하다고 본다. ‘생태주의’는 학자들의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세분화되는데, 몇 가지만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근본 생태주의’는 1970년대 이후의 환경 운동을 비판하면서 생을 영위할 권리가 모든 생명체에게 동일하게 주어져 있다는 생물 평등주의를 기반으로 자연 속에서의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동등한 가치를 지닐 뿐, 특권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자연법칙 안에서 순응하며 전체 생태계와 조화를 이룰 것을 강조한다. 근본 생태주의를 주장하는 노르웨이의 생태사상가 아르네 네스(Arne Dekke Eide Næss, 1912~2009)는 일찍이 1970년대 초반부터 현재 진행되고 있는 환경보호 운동은, 환경 문제를 발생시킨 근본적 원인인 사회체제나 문명의 진보 등을 인정하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 활동이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중심 세계관을 탈피하여 자연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노르웨이 남부 높은 산꼭대기에 오두막을 지어 살며, 스피노자의 범신론과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을 모태로 삼아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킨 그는, 생태계의 평화를 위해 근대 산업자본주의를 해체해야 한다고 확신하며 세계 여러 나라에 녹색당을 창설하는 데 앞장섰다.


‘근본 생태주의’는 1970년대 이후의 환경 운동을 비판하면서 생을 영위할 권리가 모든 생명체에게 동일하게 주어져 있다는 생물 평등주의를 기반으로 자연 속에서의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동등한 가치를 지닐 뿐, 특권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자연법칙 안에서 순응하며 전체 생태계와 조화를 이룰 것을 강조한다. 근본 생태주의를 주장하는 노르웨이의 생태사상가 아르네 네스(Arne Dekke Eide Næss,1912~2009)는 일찍이 1970년대 초반부터 현재 진행되고 있는 환경보호 운동은, 환경 문제를 발생시킨 근본적 원인인 사회체제나 문명의 진보 등을 인정하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 활동이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중심 세계관을 탈피하여 자연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노르웨이 남부 높은 산꼭대기에 오두막을 지어 살며, 스피노자의 범신론과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모태로 삼아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킨 그는, 생태계의 평화를 위해 근대 산업자본주의를 해체해야 한다고 확신하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녹색당을 창설하는데 앞장섰다.(9)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는 근본 생태주의자들도 있는데, 이들 중에는 생물 평등성을 지나치게 확장해, 인간에 대한 적대감을 정치적으로 표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소설 <멍키렌치 갱>(10)에 나오는 것과 같은 생태 테러리즘이 필요하다거나, 심지어 지구에 부담을 주는 인구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에이즈나 기아 따위를 환영한다.(11)

 
‘사회 생태주의’는 러시아 사상가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의 아나키즘을 근간으로 하고 변증법적 자연주의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 그리고 혁명적 페미니즘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대표적 학자인 머레이 북 친(Murray Bookchin, 1921~2006)은 이론가이자 실천운동가였는데, 그의 꿈은 사회구조를 바꿔 민중이 권력을 장악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최상의 무대는 시, 읍, 마을 같은 지방 자치단체다. 거기서 우리는 서로서로 얼굴을 마주한 민주 정치를 실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자유 자치주의’가 북친의 이상이었다.(12) 네스와 북친의 주장을 살펴보면 생태주의의 태생은 단순한 자연보전이 아닌 ‘정치이데올로기’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에 의한 자연 지배는 인간에 의한 인간 지배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계속 이것을 고발하고 여기에 저항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모든 형태의 지배가 철폐된, 자유 지상주의적인 공동체 사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 생태주의의 경제적 기초는 ‘도덕 경제’로 제시된다. 도덕 경제는 누구나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생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호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서 상호 책임을 지는 생산 공동체를 전제하는 것이며 여기서 서비스의 교환은 가격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도덕적 의무에 입각해 이뤄진다.(13)

 
‘생태 파시즘’은 생태 위기의 진단과 문제 해결을 위해 ‘파시즘적 경향'을 보이는 이데올로기를 뜻한다. 생태 파시즘의 철학적 입장은 ‘구명선 윤리(lifeboat ethics)’라는 용어로 집약될 수 있다. 현재 지구가 직면한 생태 위기를 난파된 배에 비유하고 구명선에 탑승 제한이 있듯이 지구의 가용 자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구증가는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14) 기후 위기와 인류 종말 등 거대 사회 혼란을 부추기며, 이러한 전 지구적 문제 해결을 약속하며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 즉 에코파시즘의 등장을 예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극단적 인간 혐오가 생태주의의 일반 정서는 아니지만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인구를 줄이기 위한 국제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생태주의’에 관한 연구는 위에 정리된 내용 이외에도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지만 ‘기후위기’를 논하는 그림책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만 정리해 보았다. 다루지 않은 것 중에는 생태 여성주의, 생태 공동체주의, 시장 생태주의, 정치 생태주의, 생태 사회주의 등이 있다.


‘생태주의’의 배경

이러한 ‘생태주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18세기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정치, 사회, 문화, 사상 모든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졌던 때이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목가적이고 자연적인 세계는 점차 기술문명의 세계에 밀려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도시 문명의 속도에 맞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새로운 운동이 생겨나게 되는데,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이성적 문명이 오히려 감성의 퇴보를 불러왔다고 주장하며 문명을 인간을 규제하는 악으로 보았다. 비슷한 흐름으로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자연’이야말로 대안적 삶의 방식이라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루소와 괴테의 시도는 ‘생태주의’와 만난다. 괴테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능률, 부지런함, 일, 직업적 활동, 사회적 인정 등과는 전혀 다른 무위, 산책, 독서, 자연과의 합일, 소박한 노동과 삶, 자기실현 및 자기완성 등을 대안적 가치로 내세운다. 베르테르는 자신이 살던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마음의 충만과 따뜻함을 느낀다. 베르테르의 자연관은 생태주의와 상당히 유사하다. 생물과 무생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그 어떤 불평등이나 복종, 지배도 없고 사유재산도 존재하지 않는 자연에서 사는 것이 문명화된 도시에서 사는 것보다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을 가진 생태주의자들은 집요하게 기독교를 공격한다. 린 화이트(Lynn Townsend White, 1907~1987)(16)는 ‘생태파괴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연에서 ’영‘을 제거한 기독교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기독교는 자연을 우상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성숙한 자연관은 자연에도 인격이 있다는 레오폴드(Aldo Leopold, 1887~1948)의 토지 윤리를 따른다. 즉 자연도 눈물 흘리고, 사랑하고, 아파한다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은 본질적으로 같을 뿐만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자연이 인간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생태주의는 반기독교적이고, 반성경적인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다.



‘기후위기’라는 그린피스의 거짓선동

심각한 문제는 과학을 떠난 정치 의제로 환경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으며, 진실을 가리고 거짓선동을 한다는 점이다. 그린피스 공동 설립자였던 패트릭 무어(Patrick Moore)는  『종말론적 환경주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1971년 미국의 알래스카 수소폭탄 실험을 저지하는 해상 시위에 참여하면서 그린피스 설립을 주도하게 됐다. 그 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생태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그린피스 최고 결정위원회에서 15년을 보내면서 수많은 환경 캠페인을 이끌었다. 그린피스 자원자들은 환경을 위한다는 숭고한 의도로 시작했으며 해가 갈수록 매우 성공적이었다. 1980년대 초에는 연간 예산이 1억 달러가 넘었고 월급 받는 직원이 1.00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린피스는 거대한 기업체로 변모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린피스엔 정식 과학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보다 정치 운동가나 환경 사업가, 언론인의 숫자가 더 많아졌다. 그러면서 정치적인 의제를 선점하기 위해 과학적 객관성을 포기하는 모습이 늘어만 갔다. 


패트릭 무어가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환경 운동’을 촉구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1986년 무어는 그린피스를 떠나기로 한다. 그들은 환경을 개선하기보다는 거짓 선동으로 사람들을 겁주고, 반사회적인 캠페인으로 자금을 모으는 데 몰두했으며, 과학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중이 진짜 속고 있는 것은 바로 ‘지구온난화’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위성 관측에서 더 이상 기온 상승이 나타나지 않자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라는 용어가 2005년경 갑자기 ‘기후변화(Climate Change)’라는 용어로 바뀌었다. 지금은 ‘기후위기’라는 거짓 선동을 한다. 환경주의자들은 미미한 확률을 주장하며 거짓 공포를 조성한다. 몇 년 전 광우병 사태가 그랬던 것처럼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 문제도 괴담 수준의 거짓 공포를 조성한다. 감정이 아닌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성숙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환경 담론은 진영 논리이다.


이산화탄소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더불어 어린이들에게 환경에 대한 공포를 유발하는 그림책은 옳지 않다. 2020년 영국 National Survey의 조사에 의하면 잘못된 기후변화 지식으로 5명 중 1명의 어린이가 악몽을 꾸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어린이들까지 환경에 대해 망상을 갖게 만들어 인간 문명과 어른들을 증오하도록 교육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림책 속 연령대의 어린이들에게 무분별한 어른들로 인해 망해가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너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촉구하는 교육이 어린이들을 위한 유익한 교육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많은 환경 그림책에서 피켓을 든 어린이들이 다수 등장한다. 어린이들로 하여금 지구에 대재앙이 올 수 있으니 새로운 가치관과 생활태도를 가져서 멸망해 가는 지구를 구해야 한다며 너희들이 저항하라는 ‘전복’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림책 마지막에 소개하는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2003~)는 학교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굶어 죽어가는 북극곰의 연출된 영상을 접한 뒤 학교 수업을 거부하고 스웨덴 국회의사당으로 가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고 항의하며 매주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School Strike 4 Climate)’을 했다. 이는 전 세계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 그림책의 여자 주인공과 오버랩 되는 그레타 툰베리는 증오와 원망의 눈빛으로 이런 연설을 했다. "당신(어른)들이 내 어린 시절을 망쳐버리고 빼앗아갔다." 그녀를 보면 어린이들에게 ‘환경’이라는 거대담론을 빌미로 잘못 교육한 '두려움'과 '공포심'이 얼마나 위력적으로 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




이 그림책 속 아이들도 피켓을 들고 ‘이건 옳지 않아요’라고 외친다. 특히 이 그림책의 주인공 어린이는 등장하는 내내 LGBTQ를 상징하는 여섯 색깔 무지개 티셔츠를 입고 있다. 환경주의자들과 주인공 소녀에게 주입된 철학적 정치적 어젠다는 동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환경에 대한 담론은 진짜 환경 이야기가 아니라 진영 논리이다. 사회구조적인 변화를 지향하며 페미니즘, 동성애, 성해방을 추구하기에 문화막시즘과 연결된다. 그리하여 이 그림책의 주인공처럼 지구를 구하러 가자면서 성해방을 함께 주장하는 것이다.


진짜 환경 이야기


세계적으로 토네이도, 태풍, 홍수, 가뭄 등 기후변화의 위험은 언제나 인류를 위협해왔으나, 유럽의 기후 사망자는 100년 동안 99% 줄었다. 그 이유는 인류 문명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기상예측이 가능해졌으며, 국토가 선진화되어 재정비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건강하고 오랜 수명을 누리고 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자연 파괴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GDP 3만 불이 넘어가면 오히려 숲이 늘어나고 도시환경이 친환경화되고, 전체 국토가 아름다워지는 것이 우리가 선진국을 통해 목도하는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1900년대 30년 대가뭄이 있었고, 폭염도 지금보다 훨씬 심했으며, 전통적으로 가뭄과 홍수의 나라였다. 가품과 홍수에 대한 대책은 ‘탄소중립’이 아니라 국토의 재정비이다. 사대강 사업으로 강이 정비되어 지금 우리는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줄인다고 기후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화석연료를 마구 써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자원을 아끼고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거짓된 이산화탄소 공포를 조장하여 잘못된 환경 정책과 정치 의제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에너지 빈곤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 최우선 정책으로 삼아 ‘탈원전’을 추진한 것은 근거 없는 공포가 과학을 침몰시킨 웃지 못할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태양광은 사막이나 광야와 같은 벌판에 만들어야지 울창한 산의 나무를 잘라내고 태양광을 설치하여 비가 조금만 내려도 산사태가 나게 만드는 재앙이 아니다. 미국 세계 삼림감시 (GFW: Global Forest Watch)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이 소위 '탈원전'에 따른 태양광 설치로 집권 4년간 8만 3,554ha 헥타르 산림이 훼손되고 249만 그루의 나무가 벌목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서울시 면적이 6만 520ha이다. 서울시 면적 이상의 산림이 파괴된 것이다. 환경운동에 돈과 권력이 모인다는 것을 알고 환경 운동을 장악하려는 사람들이 그린피스에만 있는 것은 아닌듯하다. 경제 기생충인 태양광 사업의 잘못된 방향을 수정하여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진짜 중요한 환경문제를 개선해 나가야 하겠다.


환경이라는 종교

사람들은 거짓된 기후 공포를 왜 만들어 내는 것일까? 생태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 보면 결국 전 세계 환경을 위한 일이라며 단일 통제시스템 구축으로 결론 맺어진다. 전체주의적 발상이며 성경적이지 못하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환경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다스리라고 명령하셨다. 자연을 우상화하는 생태주의자들이 성경의 인간관과 자연관을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사단의 생각들은 총동원되어 성경의 이야기 즉 창조, 타락, 구속, 회복을 방해한다.

현대 문화는 '환경'이라는 종교를 받아들였다. 이 새로운 종교는 '두려움'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통제하고 새로운 도덕에 대한 복종을 요구한다. 환경운동이 요구하는 도덕의 내용은 채식주의, 운전하지 않기, 비행기 타지 않기, 분리수거하고 재활용하기, 플라스틱 사용하지 않기 등 다양하다. 또한 이 그림책의 어린이들과 착한(?)어른처럼 깨어있는 사람들이 지구를 살려낼 것이라는 만화와 같은 환상을 제공한다. 그러나 환경운동을 하는 대표적인 스타들은 모두 개인전용기를 타고 다닌다. 현실과 이상이 분리된 인지부조화의 삶이다.

문화의 많은 영역이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현실이 아닌 망상의 허구 세계에 머물도록 파고든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 세계를 참되게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기후 위기' 자체에 몰두하여 공포와 두려움을 조장하거나 지구를 파괴하는 주범이 인간이라는 환경 교육보다는 자기 삶에 대한 책임과 윤리의식을 가르치고, 자연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돌보고 보존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환경을 위한 진정한 교육일 것이다. 그림책을 통해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 아이들의 감각을 참되게 연마하고 교육하는 그림책,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진실된 삶의 방식으로 가꾸어 가도록 이끄는 그림책이 더욱 소중한 시대이다.




(1)  『불편한 사실』 그레고리 라이트스톤(Gregory Wrightstone) 저 p127 오리건 청원 : 기후변화와 관련된 가장 큰 청원 중 하나로 인간에 의한 기후 위기론에 대한 개념을 반박하는 31.000명이 넘는 미국 과학자들이 서명한 정부가 기후협약에 비준하지 말것을 촉구하는  Oregon petition 이다. 서명자 중 9,029명은 박사학위(Ph. D) 소유자들이었다.
(2)  『불편한 사실』 그레고리 라이트스톤(Gregory Wrightstone) 저 p9.  

(3)  『불편한 사실』 저자. 미국 이산화탄소연맹 회장, 콘월얼라이언스 선임연구원, 하트랜드연구소 자문위원. 지난 40여 년간 다양한 지구과학 현상을 연구해왔다. 현재 미국에서 기후변화 회의론을 주장하는 과학자 가운데 가장 핵심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지난 트럼프 행정부의 기후에너지 정책과 사회적 여론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4) Richard Siegmund Lindzen은 중간 대기, 대기 조수 및 오존 광화학의 역학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미국 대기 물리학자.  200편이 넘는 과학 논문과 책을 출판했다. 
(5) 『불편한 사실』 그레고리 라이트스톤(Gregory Wrightstone) 저 p46-47  
(6) 1961년부터 1990년까지 평균 기온으로부터 편차를 나타내는 마이클 만의 그래프이다. 이 그래프를 비판하는 이유는 첫째, 만은 과거 기온의 대리값을 얻는 과정에서 주로 캘리포니아 브리슬콘 소나무에서 채집한 비교적 소량의 나무 나이테 자료 세트와 가스페 반도의 삼나무에서 추출한 아주 적은 양의 표본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그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 대리 값을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적은 수의 나무 나이테에서 그가 원하는 자료만을 선택적으로 택하고, 같은 지역에서 그가 의도한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 훨씬 더 많은 나무 자료들은 무시했다. 둘째, 만의 공식에 어떤 데이터를 대입하든 변함없이 ‘하키스틱’ 그래프가 나타났다. 결국 인위적 조작이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많은 데이터를 통해 관측된 물리 데이터와 역사적 기록이 우리에게 기온에 관해 실제로 무엇을 말해주는지 알려주고 있다. 
(7) https://www.picturebook-museum.com/user/theme_01.asp?idx=30
(8) 『한반도에 지저스웨이브가 온다』 김성욱 저 p202
(9) 『생태주의』 이상헌 p31 
(10) 환경파괴에 반대하여 테러를 범하는 아나키스트 작가 에드워드 에피(1927~1989) 의 소설 
(11)  『생태주의』 이상헌 지음 68~69 
(12) 『생태주의 역사강의』백승종 p28~29 
(13) 『생태주의』 이상헌 p108-113 
(14) 『생태주의』 이상헌 p73 
(15)  『생태주의자 괴테』 문학동네, 김용민 p9~15 
(16) 린 화이트는 1967년 Science지 155호에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3월10일, 1203-1207)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오늘날 생태계 위기의 역사 적인 뿌리는 바로 기독교 신앙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7)  알도 레오폴드 (1887~1948) 미국 생태학자, 근대 환경 윤리학자. 생명 공동체의 중요성 을 주장하며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 물, 바위, 공기 등의 대지 공동체는 도덕적 존중의 대상으로 평등하다 라고 주장한다. 
(18) 『종말론적 환경주의』 패트릭 무어  저 p4-7
(19) 『종말론적 환경주의』 패트릭 무어  저 p6-7
(20) 『한반도에 지저스웨이브가 온다』 김성욱 저 p202






임해영 | 그림책박물관 운영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위한 산그림 (picturebook-illust.com)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음세대에게 아름다운 그림책을 전하기 위하여 그림책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그림책박물관 (picturebook-museum.co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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