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다시 읽기


진화론 그림책, 과학일까? 믿음일까?

202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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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그림책, 과학일까? 믿음일까?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은 1859년 <종의 기원>에서 생물이 오랜 세월 동안 생존경쟁을 거쳐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다윈이 제시한 진화의 개념은 생명의 기원과 다양성에 대한 단순한 생물학 이론을 넘어 현대의 모든 영역에 새로운 해석의 틀을 제공하는 거대한 세계관이 되었다. 그러나 진화론은 가설과 추정일 뿐임을 밝히고, 진화가 과학적 사실이라는 세뇌에서 벗어나 모든 교과서와 그림책이 생명과 우주의 기원에 관하여 진짜 이야기만 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정리해 본다. 


창조론의 등장

9월 초,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취임을 앞둔 청문회에서 느닷없이 창조론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안창호 위원장이 ‘창조론도 가르쳐야 한다’고 강의했던 내용에 대한 집중적인 공격이었다. 당시 청문회 현장을 리뷰해 보자.

질문 : 후보자는 초, 중, 고 교과과정에 나오는 지구의 46억 년 역사까지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인권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검증하고 토론을 하려면 과학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데 후보자는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기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강연에서 “진화론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기 때문에 배울 필요가 없고, 교과 과정에서 진화론을 가르칠 거면 창조론도 가르쳐야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창조론이란 무엇인가요?
안후보 답변 :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 말씀입니다.

질문 : 그걸 과학적으로 어떻게 교과서에서 가르치나요?
안후보 답변 :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증명이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창조론도 진화론도 단순한 믿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적인 증거보다는 믿음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양쪽 다 같이 가르쳤으면 좋겠습니다만 제가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정할 위치에 있지도 않으며, 인권 위원장이 되더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것은 제 영역 밖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저의 종교적 신념이 인권위의 객관성을 훼손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질문 : 제가 사실 지질학과 출신이거든요. 지구의 역사가 46억 년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는데 이것은 인정하시죠? 국가 인권 위원장으로서 보편적인 과학 진리에 대해서 같은 믿음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여쭤보는 거예요. 여기에 앉아 계신 모든 사람들이 동의를 하실 텐데 후보자님은 동의가 안되시는 거죠?
안후보 답변 : 동의를 한다, 안 한다고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과학자가 아니고 그 부분은 과학의 영역이기 때문에 제가 잘 모르는 상황에 대해서….

질문 : 저도 제가 땅을 파보지 않았으니까…교과서에 그렇게 나오니까 믿는 거거든요.
안후보 답변 : 그래서 그것도 신뢰, 신앙의 문제다. 자기의 믿음의 문제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질문한 의원은 본인이 지질학과 출신이며, 지구의 역사가 46억 년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교과서에 그렇게 나오니까 믿는 것이라고 정직하게 답하였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라 설명했지만 이는 일종의 믿음이었음을 곧바로 자백한 모양이 되었다. 이어서 안 후보가 “그래서 신앙의 문제이고 믿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라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진화론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믿음이 형성되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교과서에 흔히 나오는 인용문을 살펴보자. ‘많은 사람들이 초자연적 세력이나 신성이 생명을 창조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런 설명은 과학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여기서 창조가 사실에 의거해 거짓으로 증명되었다고 말하지 않고, 다만 과학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에 주목하자. 자연주의 철학이 사실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많은 과학자들이 묻는 첫째 질문은  그 이론의 진실 여부가 아니었다. 캔자스주립대학의 한 교수가 <네이처>지에 “모든 자료가 창조를 가리킨다 하더라도 그런 가설은 과학에서 제외된다”라고 기고했다. 즉, 진화를 지지하는 증거가 하나도 없다 하더라도, 그리고 모든 증거가 창조를 선호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과학의 테두리 내에서 고려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질문한 의원은 본인이 지질학과 출신이며, 지구의 역사가 46억 년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교과서에 그렇게 나오니까 믿는 것이라고 정직하게 답하였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라 설명했지만 이는 일종의 믿음이었음을 곧바로 자백한 모양이 되었다. 이어서 안 후보가 “그래서 신앙의 문제이고 믿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라고 답변했다. 


진화론 역시 하나의 가설일 뿐

그렇다면 진화론 역시 하나의 가설이며 과학이 아닌 이유를 살펴보자. 과학이란 직접 관찰하거나 실험적 재현을 통해 자연의 원리를 밝혀내는 학문이다. 그래서 과학이란 실험이 가능하고 관찰과 증명이 되어야 하는 영역인데, 진화론은 실험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관찰도, 증명도 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상상의 산물이다. 진화론을 뒷받침했던 이론들의 오류를 몇 가지만 살펴보자.  

진화의 오류를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생명의 나무’다. 1999년에 <네이처>의 편집자인 지는 “일련의 화석들을 가지고 그들이 한 가계를 나타낸다고 주장하는 것은 시험해 볼 수 있는 과학적 가설이 아니고, 잠잘 때 읽는 동화와 같은 정도의 주장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지는 진화를 믿지만 그의 믿음은 다른 진화론자와 마찬가지로 화석 증거에 근거를 두지 않는다. 화석으로는 조상-후손 관계를 실험적으로 찾아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와 그림책에는 그런 관계를 보여주는 진화의 나무들로 가득하다.

다윈이 주장한 점진적 진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그 근거를 제공한 것이 1872년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이 제안했던 ‘지질 계통표'다. 당시 라이엘은 다윈의 <종의 기원>에 감명을 받은 상태였다. 그는 이미 사용되고 있던 베르너(Werner)의 지질 계통표를 더 세분하여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구분했다. 그런데 이때는 방사성 동위 원소를 이용한 지층 연대 측정법이 없던 때이다. 참고로 TV 조차 없던 그때 그 시절에 지구의 나이를 수억, 수십억 년으로 추측하여 간주하고 지질계통표를 만들었는데, 이때 설정한 연대가 그대로 지금도 방사성 동위 원소 측정 연대로 탈바꿈하였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지질 계통표'와 비슷한 연대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 측정하였기 때문이다.


이미 사용되고 있던 베르너(Werner)의 지질 계통표를 더 세분하여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구분했다. 그런데 이때는 방사성 동위 원소를 이용한 지층 연대 측정법이 없던 때이다. 참고로 TV 조차 없던 그때 그 시절에 지구의 나이를 수억, 수십억 년으로 추측하여 간주하고 지질계통표를 만들었는데, 이때 설정한 연대가 그대로 지금도 방사성 동위 원소 측정 연대로 탈바꿈하였다.


생명의 기원, 첫걸음을 입증한 증거로 널리 홍보되는 스탠리 밀러(Stanley Miller) 실험은 닫힌 유리 장치를 사용해 그 안에서 물을 끓인 다음, 수증기를 메탄, 암모니아 및 수소의 혼합물과 함께 순환시키며 불꽃 방전을 지나가게 한 후 생성물을 모아 약간의 아미노산들을 검출했다. 그러나 생명체에는 없는 D-형 아미노산이 몇 개 생성되었을 뿐이다. 밀러의 실험을 보고 당시 과학자들은 무기물에서 유기물인 아미노산이 발견됐으므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 아미노산이 질서정연하게 결합되어 단백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단백질을 만드는 DNA와 RNA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세포로 진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일까? 소설일까? 이것은 마치 고물상이 폭발하여 우주 왕복선이 만들어지는 기적보다 더 일어나기 힘든 것이다. 교과서를 쓰는 교수들은 밀러의 실험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밀러 본인도 세포가 만들어질 확률은 제로임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이 실험을 교과서에서 빼버리면 물질에서 생명으로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실험이 하나도 없고, 그렇게 되면 진화론이 무너지기 때문에 계속해서 교과서에 등장한다. 조금 복잡한 내용이지만 이해를 위해 현대 분자생물학이 밝혀낸 ‘세포'에 대해 첨언해 본다.


분자생물학이 밝힌 ‘세포‘

다윈은 살아 있는 세포가 지극히 단순해서 그저 젤리 모양의 거품(원형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전자현미경이 발달하면서 분자생물학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세포가 고도의 분자 기계장치들로 가득 차 있으며, 인간이 고안한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다는 사실이다. 각 세포는 공업도시의 축소판과 비슷해서 발전소와 자동화 공장과 재활용센터 등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 핵심에는 청사진과 계획들을 보관하는 세포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들은 복사 과정을 거쳐 공장들로 수송되는데, 각 공장은 전산화된 모터처럼 움직이는 분자 기계들로 가득 차 있다. 기계와 공학에 관련된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세포를 묘사하기란 불가능할 정도다. 


다윈은 살아 있는 세포가 지극히 단순해서 그저 젤리 모양의 거품(원형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전자현미경이 발달하면서 분자생물학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세포가 고도의 분자 기계장치들로 가득 차 있으며, 인간이 고안한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다는 사실이다.


다윈은 이런 차원의 복잡성을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그의 이론은 이와 같은 현상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이렇게 부품들이 서로 맞물려서 조화롭게 움직이는 시스템은 모든 조각이 제자리에 있은 다음에야 비로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조각이 하나씩 점차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모두가 동시에 출현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이클 베히 (Michael J. Behe, 1952년~ )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이란 용어를 만들었는데, 이는 그처럼 빈틈없이 통합된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복잡성을 가리킨다. 

베히가 자주 드는 예는 쥐덫이다. 먼저 쥐덫의 나무판으로 쥐를 몇 마리 잡고, 그 다음에 스프링을 덧붙여 또 몇 마리를 잡고, 망치를 덧붙여 더 많은 쥐를 잡는다는 구성은 있을 수 없다. 모든 부품이 단번에 조립되어 있어야 한 마리라도 잡을 수 있다. 즉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조각씩 붙여서 그 기능을 서서히 향상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기능을 발휘하려면 전체 시스템이 처음부터 적합한 상태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윈의 시대에는 과학자들이 생화학에 대해 전혀 몰랐다. 생물체 내부의 작동 현상은 하나의 신비로 여겨졌다. 아무도 팔다리와 기관들이 내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지느러미가 서서히 다리로, 다리가 날개로 변한다는 등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베히가 자주 드는 예는 쥐덫이다. 먼저 쥐덫의 나무판으로 쥐를 몇 마리 잡고, 그 다음에 스프링을 덧붙여 또 몇 마리를 잡고, 망치를 덧붙여 더 많은 쥐를 잡는다는 구성은 있을 수 없다. 모든 부품이 단번에 조립되어 있어야 한 마리라도 잡을 수 있다. 즉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조각씩 붙여서 그 기능을 서서히 향상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조나단 웰스가 쓴 <진화론의 상징들>에서 매장되어야 할 10가지 진화의 상징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증거와 부합하지 않으면 폐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진화의 상징들은 여전히 교과서와 그림책에 출몰하고 있으니 조나단 웰스는 이 상징들을 ‘좀비과학’이라고 부른다. 결국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의 언어를 사용한 형이상학적인 이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인 것이다. 

지금도 교과서와 그림책은 증명되지 않은 진화를 매우 과학적인 것인 양 그럴싸한 그림과 도표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마치 관찰과 실험 같이 객관적 뉘앙스를 풍기는 용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진화되는 그림들을 보며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창조론은 가설이라는 전제하에 과학에서 배제되어 언급도 되지 않는 현실이다. 


지적 설계론

최근 들어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생명과 우주, 인류의 기원을 연구해 볼수록 지적설계자의 작품임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과학혁명의 개척자들, 가령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턴, 갈릴레이 등은 우주가 고도로 질서 정연하여 창조주의 복잡한 계획을 밝히 드러내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과학적 발견을 이룰 수 있었다. 이 글의 목적이 성경의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창조론과 마찬가지로 진화론도 과학이 아닌 하나의 가설이자 믿음이라는 것을 전달하기 위함이므로 지적 설계론으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지적 설계론의 핵심은 모든 사람들은 설계의 산물을 경험적으로 간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연의 산물과 지적 설계의 산물을 쉽게 구별한다. 해변을 걸으면서 모래톱을 가로질러 새겨진 멋진 물결 모양에 감탄하지만, 그것은 바람과 파도의 산물임을 알고 있다. 벽과 탑과 울타리가 있는 모래성을 마주치게 되면, 그것도 바람과 파도의 작품이라고 생각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모래성의 물질적 성분은 물결 모양과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딱 보고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바는 그런 물질들에게 다른 종류의 질서가 부과되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지적 설계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밝혀지고 있는 주요 영역은 세 군데다. 첫째, 세포의 세계(생화학), 둘째, 우주의 기원(우주론), 셋째, DNA 구조(생물학적 정보)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연의 산물과 지적 설계의 산물을 쉽게 구별한다. 해변을 걸으면서 모래톱을 가로질러 새겨진 멋진 물결 모양에 감탄하지만, 그것은 바람과 파도의 산물임을 알고 있다. 벽과 탑과 울타리가 있는 모래성을 마주치게 되면, 그것도 바람과 파도의 작품이라고 생각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우주의 기원

세포에 대해서는 위에서 정리했으니 둘째, ‘우주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자. 오늘날 지적 설계의 증거는 물리학과 우주론에서도 밝혀지고 있는데, 우주 자체만 보더라도 생명이 살 수 있도록 정교하고 미세하게 조율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칼날 위에서처럼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천문학자 조지 그린스타인(George Greenstein)은 이렇게 말했다. “물리학의 그 무엇도 물리학의 근본 원리들이 왜 생명의 요건에 정확하게 맞추어 순응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처럼 물리적 원인을 찾을 수 없으므로 그것들이 의도(intension)의 산물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왜 자연은 그토록 교묘할 정도로, 아니 의심스러울 정도로 생명에 우호적인가?” 하고 천체물리학자 폴 데이비스(Paul Davies)는 묻는다. “마치 위대한 설계자가 그 모든 것을 궁리한 것처럼 보인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2018)은 ‘중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주가 창조될 수밖에 없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중력은 애초에 왜 존재하게 되었는가? 그것을 존재하게끔 한 힘은 무엇인가? 중력을 만들고, 수학적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모든 속성과 법칙을 부여한 이는 누구인가? 어떤 원인이나 재료도 없이 현상이나 법칙이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은 논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이다. 스티븐 호킹의 다중우주론 역시 과학적 근거로 검증할 수 없는 추측 이론일 뿐이다. 추측은 물리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이다. 다중우주의 핵심이야말로 바로 기적이 아니던가? 보이지도 않는 10,500개의 우주가 있다고 가정하느니, 한 지성적 창조주를 전제한 후 그가 우주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 정연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간단명료하다. 


스티븐 호킹의 다중우주론 역시 과학적 근거로 검증할 수 없는 추측 이론일 뿐이다. 추측은 물리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이다. 다중우주의 핵심이야말로 바로 기적이 아니던가?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Fred Hoyle, 1915~2001)은 미세하게 조율된 우주가 설계를 시사한다고 시인하지만, 기독교의 창조론에 강력히 반대하는 인물이므로, 이 설계가 다른 우주에서 온 외계의 지성이라고 제안한다. 다른 이들은 우주 자체가 고유한 지성을 가진 지적 존재라는 개념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그린스타인(George Greenstein)은 인간이 출현하여 우주를 관찰하기까지는 우주가 완전히 존재할 수 없기에 우주가 완전한 실재가 되기 위해서 인간의 의식을 진화시키기로 정했다는 것이다. 이런 개연성 없는 생각이 놀랍게도 대중화되었다. 노벨상을 수상한 생물학자 조지 윌드(George Wald, 1906~1997)는 지적인 생명이 진화한 이유는 “우주가 알려지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함으로써 동양의 신비주의자를 연상시켰다. 지적 설계의 개념을 비과학적이라고 따돌리는 과학자들이, 돌아서서는 우주가 의식이 있다느니 거의 신비주의에 가까운 이상한 개념을 포용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DNA 구조

셋째, 지적 설계의 가장 강력한 증거는 DNA 코드다. DNA 분자는 화학적 철자의 기능을 하는 네 개의 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들이 여러 순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메시지를 형성한다. 이 화학 코드를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이제 정보이론의 범주를 DNA에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유전자 코드는 참으로 컴퓨터 코드와 동일한 디지털 방식이다. 이는 모호한 유추가 아니고 문자 그대로 DNA 구조는 언어 및 컴퓨터 프로그램의 구조와 정확히 일치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우리가 어떤 메시지를 발견할 때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연적 원인들이 메시지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원 나무껍질에 ‘조지는 웬디를 사랑한다'란 글귀가 하트 모양과 새겨져 있다면 그 갈겨쓴 글자들이 자연적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류의 추론은 직관적인 것이며, 인간의 정신이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DNA 구조는 어떤 지적 설계자의 산물임을 추론할 수 있지 않을까? 현대의 유전학은 생명을 ‘신적 말씀이 들려주는 거대한 이야기’라고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 같다. 즉 생명의 텍스트를  쓴 한 저자가 있다고 말이다. 이처럼 오늘날 최신 과학은 우연에 기초한 진화론을 부정한다. 


공원 나무껍질에 ‘조지는 웬디를 사랑한다'란 글귀가 하트 모양과 새겨져 있다면 그 갈겨쓴 글자들이 자연적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류의 추론은 직관적인 것이며, 인간의 정신이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DNA 구조는 어떤 지적 설계자의 산물임을 추론할 수 있지 않을까? 


가설과 추론으로 가득한 진화론이 과학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시대적으로 요구된 철학적 문제임이 분명하다. 17세기 계몽주의 이후 유럽의 지성인들은 신의 존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애를 썼는데, 그들에게 다윈의 이론은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종의 기원>은 총 여섯 번에 걸쳐 개정되었으며, ‘진화(Evolution)’라는 단어는 제6판에서 단 한 번 사용되었다. 이는 다윈 스스로 생명이 특정한 목적과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된다는 의미의 ‘진화'라는 단어보다 ‘변이를 동반한 유전(Descent with Modification)’이라는 표현을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이제 ‘진화론'으로 불린다. 이 세상은 신이 없이 시작되었고, 신 없이도 아름답고 풍성하게 진화되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진화론적 세계관에 매료당했기 때문이다. 


진화론적 세계관, '유물론'

진화론을 둘러싼 논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과학적 이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포괄적인 세계관이 되어 전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프란시스 쉐퍼는 모든 것이 기원에 대한 견해에 달려 있음을 통찰하였다. ‘만일 당신이 우연에 의해 작동하는 비인격적인 힘, 즉 자연주의적 진화에서 시작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철학 등의 분야도 결국 자연주의로 결말이 날 것이다.’라고 했다. 다윈이 만들어 낸 진화론적 세계관이 어떻게 이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1861년 1월 16일, 마르크스는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페르디난트 라살에게 쓴 편지에서 “다윈의 책은 매우 중요하네. 나는 그 책을 읽고, 역사적 계급 투쟁을 정당화해주는 자연 과학적 근거를 발견했어. 하나님이 적어도 자연과학 영역에서 치명타를 맞았다네” 하며 기뻐했다. 마르크스의 사위 폴 라파르그는 <사회주의와 지식인들(Socialism and the Inhellectuals)>이라는 저서에서 “다윈은 <종의 기원>을 발표했을 때, 하나님에게서 창조자 역할을 빼앗았다"라고 썼다. 이때까지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간주되었으나 다윈은 인간이 동물 세계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그 책을 격찬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계속 채우고 또 채워주어야 하는 배(belly)이다. 인간을 지배하는 관심은 본질적으로 경제이며, 인간은 욕구 충족을 위해 일하고, 이를 위해 인간은 타인과 사회관계를 맺는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하부구조(infrastructure)라고 일컫는 사회의 기초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에서 끌어내고, 인간의 개념을 동물의 후손이며, 배를 채우는 것이 인간의 존재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페르디난트 라살에게 쓴 편지에서 “다윈의 책은 매우 중요하네. 나는 그 책을 읽고, 역사적 계급 투쟁을 정당화해주는 자연 과학적 근거를 발견했어. 하나님이 적어도 자연과학 영역에서 치명타를 맞았다네” 


스탈린은 러시아 정교회의 신부가 되고자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 냉혹한 경쟁이 지배하는 진화의 산물이라는 개념을 다윈에게서 배웠다. 엥겔스는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과 비교하며, 다윈의 이론이 인간 사회의 발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한 스탈린 역시 다윈의 진화론을 인간 역사와 사회 발전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가장 강하고 잔인해야 살아남는다. 자연에게서는 도덕적, 종교적 표준이 아무 소용 없으며,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스탈린은 공식적인 무신론 국가를 만들기 위해 자기 국민을 문자 그대로 수백만이나 살해했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원래 법대를 가려고 했으나 다윈의 <종의 기원>과 괴테의 <자연>이라는 책을 읽고 의대로 진학하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다윈의 진화론적 세계관에 큰 감명을 받은 듯하다. 프로이트는 마르크스와 다윈 두 거장의 연구를 완성하여, 인간을 기본적으로 성적 충동만 지닌 존재로 축소했다. 프로이트는 모든 신경증의 원인이 ‘욕망의 억압'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특히 성적인 욕망을 지속해서 억누르는 것이 인간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하였다. 다윈의 진화론이 인간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을 변화시켰듯이 인간 정신에 대한 프로이트의 이론들 역시 문학, 의학, 역사학, 교육학, 법학 등에 널리 적용되면서, 그 결과 동성애가 성적으로 부도덕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거짓말이 오늘날 모든 영역에서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프로이트는 마르크스와 다윈 두 거장의 연구를 완성하여, 인간을 기본적으로 성적 충동만 지닌 존재로 축소했다. 프로이트는 모든 신경증의 원인이 ‘욕망의 억압'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특히 성적인 욕망을 지속해서 억누르는 것이 인간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하였다. 


진화론적 세계관, '진화심리학'

오늘날 진화론자 사이에서 성장하는 분야는 다윈주의를 사회적 문화적 이슈에 적용하는 것으로 ‘진화심리학'이라 불린다. 가장 자주 다뤄지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도덕’이다. 인간의 행위가 궁극적으로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좌우되도록 짜여 있고 도덕 역시 자연선택임을 주장한다. 즉 우리가 친절하고 유익한 존재가 되려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생존을 돕고 더 많은 자손을 생산하는데 유익하기 때문에 유전자가 시켰다는 것이다. 강간 역시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병리 현상이 아니라 생식의 성공을 극대화하려는 진화론적 적응이라고 설명하며, 동물에서 일어나는 유아 살해를 연구한 심포지엄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유아 살해는 더 이상 비정상적이라고 불릴 수 없다'라는 점에 합의했다. 프린스턴 대학의 피터 싱어(Peter Singer) 교수는 인간과 동물의 성관계를 지지하는 글을 기고했는데, 진화는 우리에게 ‘우리는 동물'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따라서 종의 장벽을 넘어 섹스를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지위와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과학이 이제 일일연속극 수준으로 높이를 낮추는 수준을 넘어 혐오스러운 내용까지 포용하고 있다.


인간의 행위가 궁극적으로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좌우되도록 짜여 있고 도덕 역시 자연선택임을 주장한다. 즉 우리가 친절하고 유익한 존재가 되려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생존을 돕고 더 많은 자손을 생산하는데 유익하기 때문에 유전자가 시켰다는 것이다. 


이런 정서는 상아탑 안에 갇혀 있지 않고 대중문화로 조금씩 흘러 내려온다. 2002년에 브로드웨이에서 ‘염소, 또는 누가 실비아인가?’(The Goat, or, Who Is Silvia?)라는 연극이 공연되었다. 성공한 건축가인 주인공은 아내에게 자신이 다른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그 애정의 대상은 실비아라는 이름의 염소인 것으로 드러난다. 문화는 결국 지배적인 세계관을 표현하게끔 되어 있다. 만일 진화가 옳다면 - 정말 인간과 동물 간에 단절 없는 연속성이 존재한다면 - 싱어가 “종의 장벽을 넘은 섹스"에 관해 말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 다시 한번 프란시스 쉐퍼가 통찰한 ‘모든 것이 기원에 관한 당신의 견해’로 연결되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의 출현은 다윈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그저 과학적 사실을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충되는 세계관을 둘러싼 싸움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진화심리학의 출현은 다윈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그저 과학적 사실을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충되는 세계관을 둘러싼 싸움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나님에게서 창조자 역할을 빼앗는 것은 다윈의 본래 의도는 아니었다. 다윈은 “생명은 원래 누군가가 몇 가지 능력과 형태로 불어 넣어준 것이라는 견해는 장엄하다"라고 기록했다. 즉 최초의 생명은 무에서 창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던 것이다. 다윈은 자신의 입장을 더 강조하기 위해 <종의 기원> 2판에서는 ‘불어 넣어준' 앞에 ‘창조주가'라는 말을 삽입했을 정도다. 다윈은 2판 이후에 책을 계속 찍어내면서 그 말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다윈은 생물의 기원에 관한 이론을 설명하는 과학책을 한 권 썼을 뿐이고, 그 책에는 경제나 정치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진화론이 16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힘을 발휘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 때문이 아니라 ‘유물론’이라는 철학적 요청 때문이었다.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개념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학살한 마르크스, 스탈린, 프로이트 등등으로 이어지며 다윈은 이들의 영적 아버지가 되었다.


진화론적 세계관, '존 듀이의 교육론'

서구에서는 다윈의 영향이 좀 더 은밀한 양상을 띠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사회의 각 영역에 깊이 침투해 있다. 어린이들이 읽는 그림책의 영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교육의 영역을 살펴보자.

존 듀이는 교육의 방법론 분야에서 20세기의 누구보다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1859년에 태어난 그는, 복음주의 전통의 가정에서 자랐지만 대학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접하면서 영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듀이는 구원을 사회적 진보로 재정의한 사회 복음을 받아들였고, 30대에 이르러서는 그나마 희미했던 기독교마저 내다 버리고 일관된 자연주의 철학을 따랐다. 그의 교육철학은 지적인 탐구를 ‘정신적 진화’의 한 형태로 재조명하면서 ‘생물학적 진화’와 똑같은 패턴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먼저 문제를 제시하고 그다음에 학생들로 하여금 가장 효과가 있는 것에 기초해 스스로 답을 세우도록 하는 것인데, 이는 환경에 대한 일종의 정신적 적응을 뜻한다. 선생은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고, 학생들이 다양한 실용적 전략을 시도해서 가장 효과가 있는 것을 발견하도록 지도할 뿐이다. 무척 낯익은 풍경 아닌가? 오늘날 우리나라 공교육의 상당 부분이 듀이에게 빚지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그들의 관념이 옳은지 그른지를 이야기해 주면 안 되며, 다만 학생들이 “나름대로 이해한 것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표현하도록” 격려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교사는 어떤 면으로든 지도적 역할을 해서는 안 되며, 오직 학생들이 스스로 대안들을 견주어 보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옆에서 코치 역할만 하라고 엄격히 지시받는다. 학생들이 선택한 가치는 무엇이든 용납할 만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것이 일반적인 도덕 기준과 부합하는지에 상관없이 미리 규정된 단계를 거쳤다면 얼마든지 수용된다. 30명의 학생이 30개의 서로 다른 대답을 낸다 해도 그 모두가 그럴듯한 대답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그들의 관념이 옳은지 그른지를 이야기해 주면 안 되며, 다만 학생들이 “나름대로 이해한 것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표현하도록” 격려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우리 가운데 누구도 우리의 가치관이 다른 이에게도 옳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기 나름의 가치를 정해야 하며 개인의 가치 역시 계속해서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의 저변에 깔린 것이 진화론적 교육관이자 철학적 자연주의다. 윤리에 대한 자연주의적 접근은 어떤 초월적 표준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유일한 표준은 개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 그림책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와 매우 동일하다. 학생들에게 과거 모든 문명에 영감을 불어넣었던 위대한 도덕적 이상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자기 나름의 주관적인 감정과 가치관을 탐구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경향성은 더욱 심해져서 주관적인 감정에 따라 타고난 성별도 바꿀 수 있다는 젠더 이데올로기 사상에 기반한 성적 지향, 동성애, 성해방을 퍼트리고 있다. 


스스로 자기 나름의 가치를 정해야 하며 개인의 가치 역시 계속해서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의 저변에 깔린 것이 진화론적 교육관이자 철학적 자연주의다. 윤리에 대한 자연주의적 접근은 어떤 초월적 표준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유일한 표준은 개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 그림책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와 매우 동일하다.


진화론적 세계관, '젠더이데올로기'

앞서 언급한 안창호 인권 위원장의 임명을 인권위 내부 인사와 주류 언론들이 반대한 이유는 안위원장이 단순히 창조론을 믿기 때문만이 아니라 진화론과 맥을 같이 하는 신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동성애를 반대하고 차별 금지법을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가 인권위원회에서는 인간의 성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진화론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아 진보 좌파 정당들과 함께 차별 금지법 또는 평등법 제정을 주장해 왔다. 그래서 LGBTQ 성소수자들에게 특권을 주는 정책과 동성 성행위를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아야 하며 심지어 아이들에게 원하기만 하면 수십 가지 성별 중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교육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추진해왔던 것이다. 이런 인권위원회를 이끌 새로운 리더가 동성애와 차별 금지법을 반대한다고 하니 그토록 엄청난 공격을 하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국가 인권위원회에서는 인간의 성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진화론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아 진보 좌파 정당들과 함께 차별 금지법 또는 평등법 제정을 주장해 왔다.


현재 미국 내 여러 주(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뉴욕, 콜로라도, 매사추세츠 등등)에서 부모 동의 없이도 성별 전환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어있다. 수술은 말할 것도 없고, 호르몬 치료 역시 엄청난 고통과 부작용이 따른다. 일론머스크의 장남 중 한 명인 제비어 머스크(Xavier Musk)는 학교에서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의식화 이데올로기(woke ideology) 교육을 받으면서 성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결국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였고, 일론머스크는 사회의 거대한 ‘의식화 이데올로기'를 정확하게 비판한다. 인권위는 우리나라 역시 이와 같은 사회로 만들고자 의도하는 것인가?


마무리

다윈으로부터 비롯된 진화론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가설일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이토록 심각한 폐해를 부르는 세계관이다. 일론 머스크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가 보편적인 가치에 부합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긍정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대부분의 그림책 독자들도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진화론은 과학이 아닌 가설과 추론이라는 엄연한 사실과 생명과 우주의 기원이 우연에 의한 진화라는 가설을 지지하느니 지적 설계자가 온 우주 만물을 설계했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론이 아닐까 싶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시 2:4)’


참고문헌과 미디어 

낸시 피어시(Nancy Randolph Pearcey), 복있는사람 <완전한진리>
류현모, 깅애리, 두란노 <기독교세계관 바로 세우기>
조나단 웰스, 부흥과개혁사 <진화론의 상징들>
존 레녹스, 프리윌출판사 <빅뱅인가 창조인가>
리처드 웜브란트 (Richard Wurmbrand), 순교자의소리 <마르크스와 사탄> 
유튜브 ‘정소영의 아젠다’



[1] 낸시 피어시(Nancy Randolph Pearcey) <완전한진리> 317
[2] 조나단 웰스, < 진화론의 상징들>21~29
[3] 류현모, 깅애리, 두란노 <기독교세계관 바로 세우기>  167~170
[4] 낸시 피어시(Nancy Randolph Pearcey) <완전한진리> 349~353
[5] 조나단 웰스, < 진화론의 상징들>14
[6] 낸시 피어시(Nancy Randolph Pearcey) <완전한진리>340
[7] 낸시 피어시(Nancy Randolph Pearcey) <완전한진리>355
[8] 존 레녹스, <빅뱅인가 창조인가> 52
[9] 존 레녹스, <빅뱅인가 창조인가> 164
[10] 낸시 피어시(Nancy Randolph Pearcey) <완전한진리>358
[11] 낸시 피어시(Nancy Randolph Pearcey) <완전한진리>361
[12] 정소영, 이연임, <생각의 기원> 29
[13] 낸시 피어시(Nancy Randolph Pearcey) <완전한진리>389
[14] 리처드 웜브란트 (Richard Wurmbrand) <마르크스와 사탄> 149
[15] 리처드 웜브란트 (Richard Wurmbrand) <마르크스와 사탄> 149
[16] 시 피어시(Nancy Randolph Pearcey) <완전한진리>390~402
[17] 낸시 피어시(Nancy Randolph Pearcey) <완전한진리>402
[18] 낸시 피어시(Nancy Randolph Pearcey) <완전한진리>416
[19] 리처드 웜브란트 (Richard Wurmbrand) <마르크스와 사탄> 117~121
[20] 낸시 피어시(Nancy Randolph Pearcey) <완전한진리>446~453
[21] 유튜브 정소영의 아젠다 ‘기독교인은 공직에 앉지 못하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PgeMZlVmHJ0



임해영 | 그림책박물관 운영자

그림책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그림책박물관' (picturebook-museum.com)을 운영하며, 그림책으로 생명을 살리는 매거진 '그림책 BASIC' (picturcebool-basic.com)을 통해 바른 성경적 세계관의 그림책을 연구하고 전하고 있으며, 좋은 그림책을 읽고 살펴볼 수 있는 'Cafe그림책박물관'이라는 북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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