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도 해체해버리는 '평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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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은 일본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해방 후 귀국하여 객지를 떠돌다가 1966년부터 교회종지기로 살며 자연과 생명, 어린이와 가난한 이들을 품고 가장 낮은 곳에서 온 마음으로 글을 쓰며, 글과 삶이 일치하는 신실한 작가의 삶을 살았다. 많은 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권정생 선생님의 그림책을 비평하려니 여러 가지로 복잡해지지만, 선생님의 인생 전반의 삶이 아닌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라는 한 권의 그림책에 대한 비평인 것을 밝힌다. ‘민족’ ‘국가’ ‘애국심’으로부터 해방된 사람만이 꽃과 나무와 풀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설득하며, 애국심마저도 해체해버리는 ‘평화주의자’이자 ‘반전주의자’였던 선생님의 진실한 바람은 다음 세대를 위해 올바른 생각일까? 잘못된 생각일까?
『애국자가 없는 세상』에 대하여
『애국자가 없는 세상』 은 2000년에 발표된 권정생 선생님의 시에 김규정이 그림을 그려 2021년도에 출판되었다. 판화로 그려진 그림은 시가 가진 의미를 더욱 풍성하고 독창적으로 표현했다. 이 세상의 수많은 나라의 국기를 묘사한 장면을 한 장 넘기면 국기를 뚫고 ‘하이 히틀러!!’ 동작을 연상시키는 듯한 한쪽 팔이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서있다. 양쪽 펼침 면 사이로 사나운 맹수 중 하나인 곰과 늑대가 서로를 노려본다. 총과 탱크와 핵무기로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던 두 무리 가운데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한쪽 무리 중의 한 남자아이가 곰 가면을 벗는다. 그러자 다른 쪽 무리의 한 여자아이도 늑대 가면을 벗는다. 그리고 중앙에 놓여진 애벌레를 향해 두 아이가 다가가기 시작한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흉측해 보이는 애벌레를 안으니 애벌레 안에서 날개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두 아이가 나비의 날개를 활짝 펼쳤더니 각각의 곰과 늑대 무리들이 중앙의 나비를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곰과 늑대의 가면을 쓰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 둘 가면을 벗기 시작한다. 마침내 남녀노소 모두가 가면을 벗고 기타 치고 춤을 추고 책을 읽고 꽃을 가꾸며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독자들의 반응
이 그림책에 대한 교보, 알라딘, yes24에 실린 서평들을 살펴보면 수많은 리뷰가 달린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5점 만점인 것이 인상적이고, 대부분의 내용이 깊은 감동을 주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 그림책 제목을 보고 의구심을 가졌던 그 짧은 시간이 부끄러워졌다. 한 번 읽고, 두 번째 글과 그림을 음미하고, 세 번째로 깨달으며 애국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린이들이 “왜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인 거지?” 하고 한 번이라도 고민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인 것 같아서 많은 어린이들이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애국자가 무엇인지? 애국자란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왜 없어야 하는 것일까? 그림책을 읽으면서 소름이 끼치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하나의 틀을 마구 뒤흔들어서 새로운 문이 생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왜 애국자가 없어야 하는 거지?’라는 의구심을 가졌던 독자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본인이 가졌던 생각의 틀을 깨고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평화주의’와 ‘반전주의’를 감명 깊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애국 애족이 없다면 젊은이들이 나라와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에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탱크도 핵무기도 안 만들 테니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 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과 연인과 자연을 사랑하며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라고 하니 얼마나 아름다운 평화의 메시지인가. 이 책이 전하는 세계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애국할 필요도 없고, 나라를 지키겠다고 군대에 갈 필요도 없다.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은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고, 총을 든 군인을 바라보며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될까? 아마도 애국이란 오히려 평화를 깨는 악하고 불필요한 것이고, 나라를 위해 군대를 가는 것은 소중한 젊은 시절의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평화와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평화로운 삶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꿈이며 진정으로 우리나라에 평화가 지속되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희망으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내 주변을 아끼고 사랑하면 저절로 평화가 이루어져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것은 상상 속의 판타지일 뿐이다. 작가는 몇 줄의 시를 통해서라도 그렇게 위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판타지를 어린이들에게 심어 주는 것이 진정으로 다음 세대가 평화를 이루어 가는데 유익이 있을까? 실제로 평화는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인류 역사에 전쟁이 없던 시기는 거의 없었다. 평화와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진리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의 명언이 지금도 유효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비참한 전쟁 가운데 있다. 우크라이나는 한때 87만 명에 이를만큼 규모와 전력이 상당했으나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2013년까지 지속적으로 군사력을 감축해 2014년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길 때에는 군사력이 6천 명 남짓할 정도로 줄었다. 한 나라가 스스로 국방을 지킬 수 없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역사적인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다.
나쁜 평화? 좋은 전쟁?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약한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 나쁜 전쟁이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강대국이 되어도 약한 나라를 점령하는 나라가 되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좋은 전쟁이 있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4년간 70만 명이 희생된 미국의 남북전쟁을 통해 흑인 노예해방을 이루어냈다.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서에서 밝힌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미국의 진정한 건국정신이 완성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반도의 6.25전쟁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선전포고도 없이 불법으로 북한 조선인민군이 쳐들어와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겼다. 한 달 만에 부산을 제외한 전 국토의 90%를 점령당했다. 우리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한다. 백선엽 장군은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쏘시오. 미군은 우리를 믿고 싸우는데 우리가 후퇴할 수는 없습니다. 대한 남아로서 다시 싸웁시다. 내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겠습니다.” 라고 외치며 가장 선두로 나간다. 그 모습을 보고 수많은 군인들이 용기를 가지고 최후의 결사 항전을 하여 끝내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다.
기적적인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3개월 만에 다시 서울을 탈환하며 국군과 연합군이 평양을 탈환했지만 25만 명의 중국군의 공격으로 후퇴하여 2년간의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벌이다가 정전협정을 맺는다. 지금도 6.25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중단된 상태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로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자유대한민국은 북한을 바로 마주하고 있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국가가 된다. 미국과 유엔 연합군이 자유를 지키겠다고 싸우는 대한민국을 위해 군대를 파병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반도에서 피를 흘렸다. 미국과 연합군은 비겁한 평화보다 의로운 전쟁을 선택한 것이다.
'좋은 전쟁보다 나쁜 평화가 더 낫다'라는 입장을 가진 정부가 지난 정부다. 남북평화를 지키는 것은 군사력이 아닌 대화라는 헛된 망상으로 북한을 달래면 그들이 자발적으로 비핵화의 길로 나올 것을 기대하며 종전선언을 요구했지만 결국 북한의 도발과 핵능력은 더욱 강화되었고, 한미 동맹은 약화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공수처 설치,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북한과의 비무장지대 GP철수 등 안보지형을 허물었다. 문재인 정부가 길어졌다면 평화쇼는 더 지속되었을 것이고 대한민국의 국방력은 우크라이나보다 약화되었을 지도 모른다. 38선 바로 위에 핵을 보유한 북한이 대립하고 있고,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가 과연 평화를 지속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평화를 내세우는 평화주의자들은 김정은에게 남한을 바치고자 하는 게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CS 루이스의 『영광의 무게』
CS 루이스의 『영광의 무게』 ‘나는 왜 반전주의자가 아닌가?’라는 글에서 ‘오직 자유세계에서만 소위 ‘평화주의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경향을 지적하며 이러다간 종국에 전쟁이 없어지긴 하겠지만 전체주의 이웃 국가의 치하에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 공산당과 김정은은 쉬지 않고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대한민국을 위협해왔다. 적으로부터 생명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을 불사하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평화’를 지켜낼 수 있다. 나쁜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조평세 박사는 ‘평화 파괴자 편에 선 평화주의자’라는 기고문을 통해 문재인이나 이재명, 권정생 같은 이상주의에 빠진 평화주의는 평화 파괴자의 편에 선 것이며, 푸틴이나 김정은이 이런 자를 좋아한다며, 극단적인 평화주의자는 간첩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냉전 시기 소련은 자유세계 안에 의도적으로 다양한 평화 시민운동을 일으키며 지원했는데 실제로 ‘세계 평화’를 구호로 삼은 많은 국제 시민사회단체들이 소련 공산당에 의해 기획되어 운영되었고, 이들은 소련의 프로파간다를 자유진영에 전파하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들의 평화운동은 주로 사회주의 이상과 반미주의 감성을 무기로 삼았다. 지금도 세계 곳곳 사회 전반에 널리 그리고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는 좌익 ‘평화주의’ 운동은 여전하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소위 ‘평화주의’ 운동가들이 ‘평화’를 앞세워 한국의 안보를 해치고 한반도 평화 파괴의 주범인 북한 정권을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도 6.25 전쟁 71주년을 기념하며 12개국 1.500명의 참전용사 사진을 찍어 『6.25 참전용사 사진전』을 연 라미현 작가는 6.25 전쟁에 참전하신 분들을 더 늦기 전에 사진을 통해 기록하는 사진전을 열었다. 참전용사에게 직접 사진 액자를 전달하면 액자 값이 얼마냐고 물어보신다고 하신다. 그때마다 작가는 ‘이미 70년 전에 다 지불하셨습니다.’라고 대답하는데 그 말을 들은 미국 참전용사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너희가 빚진 게 없다. 자유인에게 의무가 있다. 자유가 없거나 뺏긴 사람들에게 자유를 전하고 지키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유는 그 자유를 전하고 지키기 위함이다. 너희도 자유를 얻었으니 너희 동포들에게 자유를 전달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다해주길 바란다.’ 지금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잊지 말아야 하는 절절한 부탁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인권단체들은 고문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과 성 노예로 팔려가는 여성과 어린이들의 인권은 보이지 않는가?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의 의무를 기억해야 한다는 노병의 이야기가 묵직하게 남는다.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는 평화를 위협하는 이러한 ‘평화주의’ 사상이 어린이들의 의식 속에 심어져서는 안 되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쟁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 생각했었다. 살아가면서 내가 가진 의식과 현실이 서로 조화되지 못하는 것을 느끼면서 이와 같은 인지부조화의 현상이 무엇 때문인지 고민이 많았다.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통해 아름답게만 들리는 이상적인 언어 속에 숨겨진 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CS 루이스는 『영광의 무게』에서 ‘전쟁이 어떤 경우에도 무엇보다 가장 큰 악이라고 주장하는 신조는 사실 죽음과 고통이 곧 최고의 악이라고 믿는 물질주의적인 윤리관을 내포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남녀를 해체하고 가족을 해체하고 애국심을 해체하는 모든 이론의 뿌리가 유물론의 시각에서 나온 신마르크스주의인 것을 이해하게 된다. 가짜 평화주의를 추동하기에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자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을 강제 북송시켜 혹독한 고문과 총살로 몰아넣어도 가슴 아파하는 마음이 없다. 가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인권을 외면하는 인지부조화의 현실을 통회하며 깨달아야 하겠다.
권정생 선생님의 시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선생님의 시처럼 개인의 삶이 아름답게 지켜지려면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국가의 튼튼한 울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울타리를 지키는 것이 군인의 아름다운 소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실을 애써 간과하고 파괴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우리는 6.25 전쟁을 잊지 말아야 하고 숭고한 군인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군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제복 입은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어머니들은 자유의 가치와 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사람에 대한 사랑과 예의를 아들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자부심을 갖는 청년들이 새벽이슬처럼 일어날 때 우리나라가 다시 한번 도약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월드뷰 2025년 7월호 - 이진명 (정치외교학사) '남한 공산화 비책,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중 발췌
이 땅에서의 평화는 펜과 선언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을 위해 승리해야 하는 전쟁터에서 무기를 내려놓으라는 '종전선언'은 달콤한 거짓 구호에 불과하다.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한국 전쟁의 종전을 위한'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이 발표되었다. 선언문과 합의 내용 문구를 보고 혹자는 협정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는 대한민국 안보를 해체하고 군사활동을 제약하는 족쇄였을 뿐임을 알 수 있다. 군사합의는 대한민국 육해공 전방의 안보를 무력화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상에서는 완충구역을 덕적도 이북에서 초도 이남까지로 설정하여 북방한계선 기준 35Km를 북한에 일방적으로 양보했다. 북한군 제4군단의 포병 및 장사정포는 가동할 수 있는데 반해, 우리는 서해5도에서 훈련이 불가능해져 수도군단에 있는 화력만 쓸 수 있게 됐다. 또한 한강 하구의 정밀 해도를 북한에 제공하여 수도권 서측의 안보 위험이 커졌다.
공중안보에서 구멍이 뚫렸다. 군비통제 역사에 유례없는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되어 북한 전방 부대의 동향 및 장사정포 감시가 불가능해졌고, 근접 정밀 타격도 어려워졌다. 육지에서는 7개 전방 부대가 해체되고, 2개 군단이 없어졌다. 서부전선에서 태풍, 필승, 불무리 부대가 해체되었다. 중부전선에서는 청성 부채 이동 배치, 노도부대 등의 해체로 백골부대만이 남았다. 동부전선에서는 뇌종부대가 후방 이동 배치되어 전방을 지키는 부대가 아예 없어졌다. 또한 전차를 보유한 기계화부대 4개 사단이 사라져 수도권이 직접적으로 고속남침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군사합의 이후 2019년 11월 창린도 해안포 사격을 시작으로 110차례 포 사격 실시, 3,400여 차례 포문 개방, 동해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중부 전선 감시초소 총격, 공동경비구역 내 비무장화 조치 위반, 군사정찰위성 발사로 공중 비행 제한 조항 위반 등 5년 간 3,600차례 군사합의 위반과 도발을 반복했다. 그동안 남한은 선제적 도발에 대한 소극적 방어만 하며 협정 이행 의지 없이 군사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북한과 종전선언을 거론하는 것은 우리의 안보를 스스로 허무는 행위다.
월드뷰 2025년 7월호 - 이진명 (정치외교학사) '남한 공산화 비책,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중 발췌
2018년부터 5년 내내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비핵화에 대한 어떠한 사전적 조치와 이행 여부 확인 없이, '종전선언'부터 할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압박은 미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미국 하원에서 민주당 소속 브래드 셔면(Brad Sheman) 의원이 2021, 2023년에 이어 2025년 2월 27일 세 번째 한반도 평화 법안을 발의했다. 셔먼 의원은 미국 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친북 세력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평화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국민주권주의, 입헌주의를 통한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 보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종북 주사파가 주장하는 평화는, 북한의 관점에서, 남한을 보호하는 UN 사령부를 해체함으로써 싸우지 않고 남한을 손쉽게 장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종전선언으로 미군이 남한에 주둔할 명분을 상실시킴으로써 북한 주도의 남한 흡수 통일, 또는 연방제를 거친 단계적 적화 통일을 꿈꾸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를 사회주의 공산국가로 통일하는 것이 최종 목표인 것이다.
자유주의 진영 군대 철수가 공산화에 미친 영향은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베트남에서는 전쟁 종식을 위해 1973년 미군 철수와 남북의 평화적 공존을 내용으로 하는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그러나 미군 철수 후에 북베트남이 사이공을 점령하여 1975년 사회주의 공산국가로 통일함으로써, 평화협정은 '적화통일의 숨은 계략'일 뿐이었음이 증명되었다. 평화협정으로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평화협정을 도구로 전력의 우위를 점령하고 마침내 나라를 빼앗은 것이다. 홍콩의 경우, 1997년 영국이 중국에 홍콩을 반환하면서 영국군이 철수하였다. 일국양제 원칙(하나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자본주의 체제 공존)에 따라 홍콩은 50년 자치권을 보장받았지만, 중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014년 우산 혁명과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등 대대적인 자유 수호를 위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으로 언론 탄압, 2021년 선거제 개편으로 홍콩의 공산화는 급속 진행되었다.
북한은 남한에 비해 현역 군인은 2배 이상, 예비 병력은 3배 이상 많으며, 최근 우크라이나전 투입으로 실전 경험까지 갖췄다. 그러나 우리 군은 안보의식 약화, 복무기간 단축, 훈련 강도 약화, 군기밀 유출, 기강 해이, 군병력 급감의 문제 등을 마주하고 있다. 군 병력을 강화하고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확대하여 강력한 안보로 평화를 비켜야 한다.
공산 통일을 당할 것인가? 복음 통일을 이룰 것인가? 시대적 사명을 깨달은 교회는 기독교 세계관 구축과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한 사상교육과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를 전파하고 가르치며, 개개인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시대적 사명을 깨닫고, 자신의 실력을 쌓는 것이 국가의 힘을 키우고, 각 영역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을 증언하여, 평화적인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이루어 70년 고통받는 북한의 주민들을 노예의 삶에서 자유인의 삶이 되도록 돕는 것이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길임을 알고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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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해영 | 그림책박물관 운영 '그림책박물관' 사이트를 운영하며 그림책으로 생명을 살리는 매거진 ‘그림책 BASIC’을 통해 바른 성경적 세계관의 그림책을 연구하고 전하고 있다. 2023년 4월, 원흥동에 ‘Cafe 그림책박물관'이라는 북카페를 오픈했다. |
애국심도 해체해버리는 '평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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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은 일본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해방 후 귀국하여 객지를 떠돌다가 1966년부터 교회종지기로 살며 자연과 생명, 어린이와 가난한 이들을 품고 가장 낮은 곳에서 온 마음으로 글을 쓰며, 글과 삶이 일치하는 신실한 작가의 삶을 살았다. 많은 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권정생 선생님의 그림책을 비평하려니 여러 가지로 복잡해지지만, 선생님의 인생 전반의 삶이 아닌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라는 한 권의 그림책에 대한 비평인 것을 밝힌다. ‘민족’ ‘국가’ ‘애국심’으로부터 해방된 사람만이 꽃과 나무와 풀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설득하며, 애국심마저도 해체해버리는 ‘평화주의자’이자 ‘반전주의자’였던 선생님의 진실한 바람은 다음 세대를 위해 올바른 생각일까? 잘못된 생각일까?
『애국자가 없는 세상』에 대하여
『애국자가 없는 세상』 은 2000년에 발표된 권정생 선생님의 시에 김규정이 그림을 그려 2021년도에 출판되었다. 판화로 그려진 그림은 시가 가진 의미를 더욱 풍성하고 독창적으로 표현했다. 이 세상의 수많은 나라의 국기를 묘사한 장면을 한 장 넘기면 국기를 뚫고 ‘하이 히틀러!!’ 동작을 연상시키는 듯한 한쪽 팔이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서있다. 양쪽 펼침 면 사이로 사나운 맹수 중 하나인 곰과 늑대가 서로를 노려본다. 총과 탱크와 핵무기로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던 두 무리 가운데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한쪽 무리 중의 한 남자아이가 곰 가면을 벗는다. 그러자 다른 쪽 무리의 한 여자아이도 늑대 가면을 벗는다. 그리고 중앙에 놓여진 애벌레를 향해 두 아이가 다가가기 시작한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흉측해 보이는 애벌레를 안으니 애벌레 안에서 날개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두 아이가 나비의 날개를 활짝 펼쳤더니 각각의 곰과 늑대 무리들이 중앙의 나비를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곰과 늑대의 가면을 쓰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 둘 가면을 벗기 시작한다. 마침내 남녀노소 모두가 가면을 벗고 기타 치고 춤을 추고 책을 읽고 꽃을 가꾸며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독자들의 반응
이 그림책에 대한 교보, 알라딘, yes24에 실린 서평들을 살펴보면 수많은 리뷰가 달린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5점 만점인 것이 인상적이고, 대부분의 내용이 깊은 감동을 주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처음에는 ‘왜 애국자가 없어야 하는 거지?’라는 의구심을 가졌던 독자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본인이 가졌던 생각의 틀을 깨고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평화주의’와 ‘반전주의’를 감명 깊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애국 애족이 없다면 젊은이들이 나라와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에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탱크도 핵무기도 안 만들 테니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 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과 연인과 자연을 사랑하며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라고 하니 얼마나 아름다운 평화의 메시지인가. 이 책이 전하는 세계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애국할 필요도 없고, 나라를 지키겠다고 군대에 갈 필요도 없다.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은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고, 총을 든 군인을 바라보며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될까? 아마도 애국이란 오히려 평화를 깨는 악하고 불필요한 것이고, 나라를 위해 군대를 가는 것은 소중한 젊은 시절의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평화와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평화로운 삶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꿈이며 진정으로 우리나라에 평화가 지속되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희망으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내 주변을 아끼고 사랑하면 저절로 평화가 이루어져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것은 상상 속의 판타지일 뿐이다. 작가는 몇 줄의 시를 통해서라도 그렇게 위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판타지를 어린이들에게 심어 주는 것이 진정으로 다음 세대가 평화를 이루어 가는데 유익이 있을까? 실제로 평화는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인류 역사에 전쟁이 없던 시기는 거의 없었다. 평화와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진리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의 명언이 지금도 유효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비참한 전쟁 가운데 있다. 우크라이나는 한때 87만 명에 이를만큼 규모와 전력이 상당했으나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2013년까지 지속적으로 군사력을 감축해 2014년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길 때에는 군사력이 6천 명 남짓할 정도로 줄었다. 한 나라가 스스로 국방을 지킬 수 없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역사적인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다.
나쁜 평화? 좋은 전쟁?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약한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 나쁜 전쟁이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강대국이 되어도 약한 나라를 점령하는 나라가 되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좋은 전쟁이 있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4년간 70만 명이 희생된 미국의 남북전쟁을 통해 흑인 노예해방을 이루어냈다.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서에서 밝힌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미국의 진정한 건국정신이 완성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반도의 6.25전쟁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선전포고도 없이 불법으로 북한 조선인민군이 쳐들어와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겼다. 한 달 만에 부산을 제외한 전 국토의 90%를 점령당했다. 우리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한다. 백선엽 장군은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쏘시오. 미군은 우리를 믿고 싸우는데 우리가 후퇴할 수는 없습니다. 대한 남아로서 다시 싸웁시다. 내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겠습니다.” 라고 외치며 가장 선두로 나간다. 그 모습을 보고 수많은 군인들이 용기를 가지고 최후의 결사 항전을 하여 끝내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다.
기적적인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3개월 만에 다시 서울을 탈환하며 국군과 연합군이 평양을 탈환했지만 25만 명의 중국군의 공격으로 후퇴하여 2년간의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벌이다가 정전협정을 맺는다. 지금도 6.25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중단된 상태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로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자유대한민국은 북한을 바로 마주하고 있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국가가 된다. 미국과 유엔 연합군이 자유를 지키겠다고 싸우는 대한민국을 위해 군대를 파병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반도에서 피를 흘렸다. 미국과 연합군은 비겁한 평화보다 의로운 전쟁을 선택한 것이다.
'좋은 전쟁보다 나쁜 평화가 더 낫다'라는 입장을 가진 정부가 지난 정부다. 남북평화를 지키는 것은 군사력이 아닌 대화라는 헛된 망상으로 북한을 달래면 그들이 자발적으로 비핵화의 길로 나올 것을 기대하며 종전선언을 요구했지만 결국 북한의 도발과 핵능력은 더욱 강화되었고, 한미 동맹은 약화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공수처 설치,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북한과의 비무장지대 GP철수 등 안보지형을 허물었다. 문재인 정부가 길어졌다면 평화쇼는 더 지속되었을 것이고 대한민국의 국방력은 우크라이나보다 약화되었을 지도 모른다. 38선 바로 위에 핵을 보유한 북한이 대립하고 있고,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가 과연 평화를 지속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평화를 내세우는 평화주의자들은 김정은에게 남한을 바치고자 하는 게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CS 루이스의 『영광의 무게』
CS 루이스의 『영광의 무게』 ‘나는 왜 반전주의자가 아닌가?’라는 글에서 ‘오직 자유세계에서만 소위 ‘평화주의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경향을 지적하며 이러다간 종국에 전쟁이 없어지긴 하겠지만 전체주의 이웃 국가의 치하에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 공산당과 김정은은 쉬지 않고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대한민국을 위협해왔다. 적으로부터 생명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을 불사하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평화’를 지켜낼 수 있다. 나쁜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조평세 박사는 ‘평화 파괴자 편에 선 평화주의자’라는 기고문을 통해 문재인이나 이재명, 권정생 같은 이상주의에 빠진 평화주의는 평화 파괴자의 편에 선 것이며, 푸틴이나 김정은이 이런 자를 좋아한다며, 극단적인 평화주의자는 간첩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냉전 시기 소련은 자유세계 안에 의도적으로 다양한 평화 시민운동을 일으키며 지원했는데 실제로 ‘세계 평화’를 구호로 삼은 많은 국제 시민사회단체들이 소련 공산당에 의해 기획되어 운영되었고, 이들은 소련의 프로파간다를 자유진영에 전파하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들의 평화운동은 주로 사회주의 이상과 반미주의 감성을 무기로 삼았다. 지금도 세계 곳곳 사회 전반에 널리 그리고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는 좌익 ‘평화주의’ 운동은 여전하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소위 ‘평화주의’ 운동가들이 ‘평화’를 앞세워 한국의 안보를 해치고 한반도 평화 파괴의 주범인 북한 정권을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도 6.25 전쟁 71주년을 기념하며 12개국 1.500명의 참전용사 사진을 찍어 『6.25 참전용사 사진전』을 연 라미현 작가는 6.25 전쟁에 참전하신 분들을 더 늦기 전에 사진을 통해 기록하는 사진전을 열었다. 참전용사에게 직접 사진 액자를 전달하면 액자 값이 얼마냐고 물어보신다고 하신다. 그때마다 작가는 ‘이미 70년 전에 다 지불하셨습니다.’라고 대답하는데 그 말을 들은 미국 참전용사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너희가 빚진 게 없다. 자유인에게 의무가 있다. 자유가 없거나 뺏긴 사람들에게 자유를 전하고 지키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유는 그 자유를 전하고 지키기 위함이다. 너희도 자유를 얻었으니 너희 동포들에게 자유를 전달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다해주길 바란다.’ 지금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잊지 말아야 하는 절절한 부탁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인권단체들은 고문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과 성 노예로 팔려가는 여성과 어린이들의 인권은 보이지 않는가?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의 의무를 기억해야 한다는 노병의 이야기가 묵직하게 남는다.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는 평화를 위협하는 이러한 ‘평화주의’ 사상이 어린이들의 의식 속에 심어져서는 안 되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쟁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 생각했었다. 살아가면서 내가 가진 의식과 현실이 서로 조화되지 못하는 것을 느끼면서 이와 같은 인지부조화의 현상이 무엇 때문인지 고민이 많았다.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통해 아름답게만 들리는 이상적인 언어 속에 숨겨진 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CS 루이스는 『영광의 무게』에서 ‘전쟁이 어떤 경우에도 무엇보다 가장 큰 악이라고 주장하는 신조는 사실 죽음과 고통이 곧 최고의 악이라고 믿는 물질주의적인 윤리관을 내포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남녀를 해체하고 가족을 해체하고 애국심을 해체하는 모든 이론의 뿌리가 유물론의 시각에서 나온 신마르크스주의인 것을 이해하게 된다. 가짜 평화주의를 추동하기에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자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을 강제 북송시켜 혹독한 고문과 총살로 몰아넣어도 가슴 아파하는 마음이 없다. 가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인권을 외면하는 인지부조화의 현실을 통회하며 깨달아야 하겠다.
권정생 선생님의 시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선생님의 시처럼 개인의 삶이 아름답게 지켜지려면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국가의 튼튼한 울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울타리를 지키는 것이 군인의 아름다운 소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실을 애써 간과하고 파괴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우리는 6.25 전쟁을 잊지 말아야 하고 숭고한 군인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군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제복 입은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어머니들은 자유의 가치와 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사람에 대한 사랑과 예의를 아들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자부심을 갖는 청년들이 새벽이슬처럼 일어날 때 우리나라가 다시 한번 도약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공산 통일을 당할 것인가? 복음 통일을 이룰 것인가? 시대적 사명을 깨달은 교회는 기독교 세계관 구축과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한 사상교육과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를 전파하고 가르치며, 개개인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시대적 사명을 깨닫고, 자신의 실력을 쌓는 것이 국가의 힘을 키우고, 각 영역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을 증언하여, 평화적인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이루어 70년 고통받는 북한의 주민들을 노예의 삶에서 자유인의 삶이 되도록 돕는 것이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길임을 알고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임해영 | 그림책박물관 운영
'그림책박물관' 사이트를 운영하며 그림책으로 생명을 살리는 매거진 ‘그림책 BASIC’을 통해 바른 성경적 세계관의 그림책을 연구하고 전하고 있다. 2023년 4월, 원흥동에 ‘Cafe 그림책박물관'이라는 북카페를 오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