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 인간 문명을 거부하는 '생태주의, 환경주의'

202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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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문명을 거부하는 '생태주의, 환경주의'




책 표지에 한 남자가 욕실에서 면도를 하고 있다. 거울에 비친 남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출근하는 그의 마음이 불편해 보인다. 서두르는 것일까? 단순히 기분이 나쁜 하루인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감사와 기대감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과, 그와는 반대인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그림책 속 주인공 블레즈씨는 출근 시간이 괴롭고, 회사 생활은 의미가 없으며, 그의 내면은 온통 자연으로 꽉 차 있다. 작가는 주인공의 내면을 그림을 통하여 독자에게 전한다. 벽지, 바닥 타일, 액자, 화분, 소파 등 집안의 모든 인테리어와 소품들을 통해 블레즈씨의 갈망을 발견할 수 있다. 입고 잠드는 잠옷도, 덮고 자는 이불도, 벽지도 온통 자연이다.

어느 날 블레즈씨에게 이상한 일이 생긴다.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으려 하니 발이 털로 뒤덮여 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회사에는 가야 하니까 장화를 신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장화 속에 감춘 걱정거리를 잊기 위해 일에 더욱 집중한다. 끔찍한 하루를 보낸 그날 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독이며 내일이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오길 바라며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 기대와 달리 상태는 더 나빠졌다. 날이 갈수록 온몸이 털로 뒤덮인다. 오늘도 블레즈씨는 끔찍한 표정으로 이빨을 닦으며 출근 준비를 한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짐작할 수 있다. “.... 실업률은…. 하반기 부채가 점점… 중동에서는 전쟁 위험이… 이 시각 고속도로 정체는…” 현대 사회가 당면한 부정적인 면들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하고 있다. 

블레즈씨는 오늘도 ‘어쨌든’ 회사에는 가야 하니까 온몸의 털을 감추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그에게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일’이다. ‘일’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오늘을 참고 인내하기도 한다. 블레즈씨에게 회사는 아무런 보람도 기쁨도 없지만 가야만 하는 곳이기에 매일 서둘러 ‘어쨌든’ 집을 나선다. 작가는 회사로 대변되는 인간 사회를 아무런 배려도 행복도 여유도 찾을 수 없는 냉정한 곳으로 그리고 있다. 블레즈씨는 누구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청할 수 없는 그곳에서 매일 불행한 일을 반복하고 있다. 회사뿐만이 아니다. 블레즈씨가 살고 있는 도시는 검은 연기만을 뿜어내는 어두운 도시로 그려져 있고, 그 도시를 사는 사람들도 아무런 표정 없이 모두 똑같은 안경을 쓰고 앞만 보고 걷는 로봇처럼 삭막하게 그려지고 있다.

드디어 온몸이 곰이 된 블레즈씨. 인간 됨을 완전히 벗어났을 때 그는 밤거리를 걸으며 밤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시를 벗어나 숲에 도착하여 ‘이제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 살아왔던 모든 걸 잃었는데도 불구하고 곰이 된 그는 높은 나무를 오르며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은 순수한 해방감을 느낀다. 다른 곰이 그에게 다가와 검은 연기가 자욱한 도시를 향해 “너 혹시 저기 아니?”라고 묻는다. 곰이 된 블레즈씨는 “글쎄… 뭔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라고 대답한다. 마침내 그는 자아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곰이 되었다. 작가는 ‘결국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며 위로하고 있지만 곰이 된 그가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 그 끝은 알 수 없다.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생각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여러 가지 사상으로 깊고 은밀하게 들어와 사슬처럼 엮이며 생태주의, 환경주의, 자연주의, 뉴에이지, 범신론 등의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세계관은 여러 가지 문화 콘텐츠로 세상에 전해지는데 어린이들이 보는 그림책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최근 들어 인류 문명을 죄악시하고, 인간을 환경 오염의 범죄자로 표현하는 그림책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레이첼카슨(1)이나 그레타툰베리(2)를 다룬 어린이책은 지나치게 많이 생산되고 있는데 과학적인 사실과는 다른 경우가 많다. <침묵의 봄>(3)은 거짓이었고, 산성비와 유전자 변형, 환경 호르몬 등도 과장된 헛소동이었다는 것이 밝혀졌고(4), 북극곰은 개체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오늘도 멸종 위기종으로 널리 광고의 주인공이 되어(5), 거짓 영상에 속은 작가들은 지금도 북극곰 그림책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있다. 

식량 고갈로 공포를 유발했던 자원 고갈론은 1980년, 90년대를 지나며 폐기되었지만 새로운 환경 종말론자들은 눈에 안 보이는 이산화탄소와 원자력으로 공포의 대상을 옮겨갔다. 그래서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이산화탄소는 주된 온실가스가 아니며, 오히려 식물 생존에 없어서는 안되는 영양물질이며, 가장 환경친화적인 에너지는 바로 원자력임을 주장해도 듣지 않는다(6). 더 걱정스러운 것은 툰베리같은 어린이들까지 끌어들여 지구와 산업, 인간 문명을 증오하도록 교육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독자인 어린이들로 하여금 지구를 지킬 권리가 너희에게 있다며 피켓을 들고 저항하라는 ‘전복’의 메시지를 전한다. 각 나라의 녹색당이 왜 필연적으로 체제 전복적인 메시지, 예를 들어 페미니즘이나 동성애, 성해방 운동과 맥을 같이 하게 되는지 그 만나는 지점을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상의 기원은 무엇일까? 르네상스 이후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일종의 도피 운동이 생겨나게 된다.  『프란시스 쉐퍼의 기독교 변증』에 따르면 ‘루소는 인간의 이성에 의지하여 인간과 세계를 설명하면 모든 것이 기계로 보이게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명인보다는 자연 상태의 원시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루소와 그의 추종자들은 이성을 경시했고, 또한 문명이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는 것을 악이라고 보았다. 루소는 원시적인 것을 무죄한 것으로, 자율적인 자유를 궁극적인 선 곧, 신적 대체물로 보았다. 루소가 생각한 자유는 하나님 혹은 성경으로부터의 자유일 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다. 이 자유 안에서는 개인이 우주의 중심이 된다. 루소의 자율적 자유 개념은 사회의 표준, 가치, 규제에 대항하여 싸우는 사람을 영웅으로 우대하는 보헤미안적 이상으로 나아갔고, 1960년대 히피 문화의 발원지가 되었다. 루소의 영향은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났다. 풀 고갱은 루소의 철저한 추종자로서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야만인을 이상적인 존재로 보고 야만인에게서 자유를 발견하기 위하여 가족을 버리고 타이티로 갔다. 그러나 고갱은 타이티에서 자신의 기대가 환상이며, 그곳에는 잔인성과 죽음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고갱은 타이티에서 매독, 우울증, 가난 등에 시달리면서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그렸다(7).’


P. Gauguin / 1897 (현재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소재의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


블레즈씨의 자아는 끊임없이 곰과 같은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싶었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마침내 그는 인간 됨을 거부하고 곰이 되었다. 일종의 꿈을 이룬 것이다. 그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게 되었을까? 자유를 발견하기 위해 가족을 버리고 타이티로 떠난 고갱의 모습이 떠오른다. 

모든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길 꿈꾸는 것은 어린이나 어른이나 인간의 본능일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는 나의 본능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내 삶에 대한 책임을 지는 태도일 것이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잠시 일탈을 꿈꾸거나 나의 욕망을 채워주는 취미나 소품으로 마음을 위로할 수는 있겠지만 다시 아침 해가 뜨면 넥타이를 매고, 구두끈을 새로 묶으며 주어진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성숙한 어른의 삶일 것이다. 

이 그림책의 독자 리뷰를 살펴보면 고단한 사회생활 가운데에서도 끊임없이 꿈을 꾸었던 주인공이 마침내 꿈을 이룬 모습에서 의미를 찾기도 하고, 힘이 들지만 회사에는 가야 하니까 아침마다 서둘러 출근하는 모습에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어린이에게 유익한 가르침과 의미는 무엇일까?

작가는 의도적으로 도시문명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한때 산업혁명으로 도시의 공기가 매연으로 가득했던 때도 있었지만, 새로운 에너지와 기술 개발로 선진국일수록 도시환경은 더 좋아지고 있고, 지구는 사막화되는 것이 아니라 더 푸르러지고 있으며, 아름답게 개간된 한강변의 모습은 100년 전보다 확실히 아름다워졌다. 생태 근본주의자들은 아무것도 손상시키지 말고 자연 그대로 두라고 하지만 열 평짜리 정원도 그냥 두면 잡풀이 덩굴처럼 자라고 동네 길고양이들의 용변으로 악취나는 쓰레기 더미가 되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부지런한 인간의 손길이 있을 때 자연도 더 아름다워진다. 

우리는 문화명령을 이루어가는 청지기로서 인류 문명을 발전시켜가야 할 책임이 있고, 창조의 피조물인 지구 환경과 동식물을 더 나은 방식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갈 소명이 있다. 그것은 인간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자연에 대한 죄의식으로 가득한 생태주의나 환경주의 운동도 아닌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과 절제, 성실을 다하는 직업의식과 윤리의식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법칙, 즉 도덕법 안에서 지켜나갈 때 가장 아름답게 자연을 다스리며 일상을 가꾸어갈 수 있을 것이다.




(1) Rachel Louise Carson, (1907년5월27일~1964년4월14일)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이며 열성적인 생태주의자이다. 잘 알려진 작품으로 <침묵의 봄>이 있으며, 이 책은 환경운동이 진보하는데 큰 몫을 했다
(2) 2018년 8월, 스웨덴 의회 밖에서 처음으로 청소년 기후행동을 한 것을 시작으로, 2019년 전 세계적인 기후 관련 동맹휴학 운동을 이끈 인물이다. 2019년 타임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 2019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선정되었다
(3) 『침묵의 봄』 (Silent Spring)은 1962년 레이첼 카슨이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살포된 살충제나 제초제로 사용된 유독물질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쓴 책으로, 환경운동이 서양에서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된 책이다. 레이첼 카슨의 잘못된 주장 탓에 DDT사용이 금지되자 저개발국가들의 말라리아 환자가 급증했다
(4) 『종말론적 환경주의』 패트릭 무어 p 203-211
(5)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p496
(6) 『종말론적 환경주의』 패트릭 무어 p228-232
(7)  『프란시스 쉐퍼의 기독교 변증』 이상원 저  p83~84




임해영 | 그림책박물관 운영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위한 산그림 (picturebook-illust.com)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음세대에게 아름다운 그림책을 전하기 위하여 그림책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그림책박물관 (picturebook-museum.co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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